이덕희 한미재단 회장
점심시간은 참 귀중한 시간이다. 일을 해결해야 할 사람들과 만나 점심을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또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의논하기도 한다.
유학생들에게는 한 끼 잘 먹이는 시간이기도 하고, 방문객들과는 서울 소식이나 본토 소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물론 이 곳 친구들과는 수다를 떨고 미운 사람 흉보는 재미(?)를 맛보는 시간이다. 무슨 이유로든 점심을 나누면 정이 두터워 진다. 그래서 한국식 표현으로 “한 솥 밥을 먹는” 관계이거나, 서양식 표현으로 “빵을 떼어 먹는” 관계라는 표현과 같이 점심이라도 한 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돈독한 것이다.
요사이는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는 그런 넉넉함은 없어졌다. 음식점에서 먹는 것이 편하고, 또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좋은 점도 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어느 분의 집에서 아주 특별한 점심을 먹게 되었다.
1주일 동안 항암치료를 받은 후 2 주일 쉬면서 숨을 고르게 된 70세 된 분으로부터 활기차고 밝은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서울 친구가 맛있는 반찬을 보내 왔으니, 와서 같이 나눠 먹읍시다!” 라는 점심 초청 전화였다. 1개월 전에 폐암 진단을 받은 분이다.
그 분의 초청을 받은 몇몇은 찐 영광굴비며, 돌갓 김치, 씀바귀 장아찌, 잘 숙성시킨 홍어 등을 맛있게 먹었다. 한국서 온 귀한 반찬도 반찬이지만, 음식 솜씨 좋은 환자분이 손수 만든 열무김치는 우리 모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내놓은 모든 음식이 맛이 있어 웃고 떠들었던 것만은 아니다. 아무도 ‘마지막 만찬’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자기 삶을 끝까지 나누는 머리가 다 빠진 환자가 우리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만 16살에 가장 노릇을 하면서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 2학년에 중퇴를 했던 그다. 그는 가난이 싫어 가출한 아버지, 오빠와 언니 없이 4 남매를 지켜주는 어머니에게 구멍가게 하나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조그만 회사에 급사로, 또 음식점 부엌 도우미로 일을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주위의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자신의 음식점을 운영할 수 있었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만큼의 수입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하와이로 관광을 왔다가, 7월 17일 제헌절에 갓 이혼한 한 남자를 만나, 10월 3일 개천절에 결혼하여 30년을 함께 한 천생연분의 남편이 있는 분이다. 그 분이 14년 전 시작한 ‘문스북클럽’이 이제는 ‘한국도서재단’으로 자랐다. 억척스럽게 뛰어 다녀 매해 3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마련하고, 주립 도서관에 한글 책과 로컬 사람들을 위한 영어 자막의 한류 드라마와 영화 DVD를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자신은 시간이 없어 책도 드라마도 보지 못하는 문(김)숙기 여사의 이야기이다.
문숙기 여사가 암 진단을 받고 첫 번으로 한 일이 자신 소유의 임대 아파트 건물을 한국도서재단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쓴 것이다. 그 유서에는 자기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 반은 맥컬리도서관 한글 도서 코너를 확장하는데 써달라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의 남편도 아내의 결정에 흔쾌히 동조하였다.
문숙기 여사가 있어 하와이 한국 사회는 문자 그대로 풍족해졌고, 그가 몸소 보여준 나눔의 삶은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가 항암치료로 완쾌되어 “도서기금 좀 내달라”는 귀찮은 부탁을 다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맛있는 점심 초대도 기대해 본다.
<사진설명: 7월 카피올라니 공원에서 열린 한국축제장에서 한국 도서장터를 찾은 주립도서관장과 함께한 문숙기 여사(오른쪽). 문여사는 매년 도서장터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특유의 손 맛으로 푸짐한 음식을 준비하고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올해 축제를 마친 후 어깨가 아파 지압을 받던 중 지압사가 이상을 발견해 병원을 찾아 발병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문여사는 한국축제 음식장만 덕분에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하다며 활기 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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