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너머로 해가 넘어 무렵갈 무렵 뒷짐지고 가회동을 배회하는 것은 가히 낭만적이며, 대문두드려 반겨 맞을 이가 있다는건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이다.
가회동 31번지 가장 안쪽 골목 중턱에 위치한 한옥에 한옥지킴이로 알려진 데이비드 킬번(David Kilburn)씨 내외가 살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로 사용되고 있는 작은 마루 공간에 중국식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고, 검은 썬그라스에 중절모를 쓴 금발의 할아버지가 자코모 푸치니의 나비부인 들으며 고요히 의자 한켠에 앉아 있다. 바로 데이비드 킬번이다.
작은 연못에는 금붕어들이 한가히 노닐고, 꽃들이 마당 가득 향기를 뿜는 저녁 킬번씨랑 보이차를 마셨다.
영국인 저널리스트로서 80년대 초에 일본 경제관련 기자로도 활동하였으며, 1987년 부인 최금옥(Jade Kilburn)씨를 일본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그 다음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여, 한옥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88년 처음 살게된 한옥을 무척 사랑했으며 주변의 한옥들을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투사이기도 하다.
2004년 ‘북촌가꾸기기본계획’이 본격화되면서 가회동은 한옥 부동산 투기 바람에 휘몰리게 되었다. 정부의 한옥 개보수 비용 보조 정책이 시행되면서 개발업자들은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를 얹은 한옥들을 붕어빵찍듯 만들어내기 시작했으며, 투기꾼들은’등록한옥’을 빙자하여 어처구니 없는 크기와 걸맞지 않는 모양새의 한옥을 지어대기 시작했다.
킬번씨가 운영하는 가회동 닷컴(www.kahoidong.com)의 자료에 의하면, 85년 1,518채 였던 가회동 한옥은 2007년 900채, 현재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거의 반절의 한옥이 개발업자와 투기꾼의 등살에 간신히 건재하고 있다.
2004년 한옥보존 정책이 시작되면서 멀쩡한 한옥이 포크레인에 쓰러져 가는 것을 보다 못한 킬번씨는 수 십통의 한옥 보존관련 진정서를 시장에게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 해, 터무니 없는 보수가 시작된 옆집 한옥의 사진을 찍다가 개발업자에게 떠밀려 쓰러진 킬번씨는 한달이상 병원에 입원 했으며, 급기야 실명을 하였다.
그의 한옥사랑은 아직도 변함이 없으며, 영화 ‘빈집’을 찍기도 한 그의 한옥은 따끈한 온돌방이 그리운이에게 언제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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