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쁘게 살다보면 정작 세상 돌아가는 일에 어둡다. 먹고 살기 급급한 탓이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지만 애당초 미군이 왜 거기 갔었는지 아리송하고, 본국 신문과 TV가 허구한 날 지지고 볶는 ‘세종 시’나 ‘4대강 사업’도 무슨 얘긴지 모르는 한인이 많다.
한인사회 안의 일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지난달 한인 몇이 어느 선거에 출마해서 결과가 어땠는지 꿰뚫는 사람이 많지 않다. 두 한인후보의 11월 본선 결과보다 TV연속극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윤시윤)와 양미순(이영아) 사이의 관계전개 예상에 더 열을 올린다.
요즘 한인사회에서 한미 FTA 지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덕수 주미대사도 이 번 주초 시애틀로 날아와 홍보활동을 두 차례 벌였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이후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이 역시 내용을 소상하게 아는 한인이 많지 않아 보인다.
FTA는 ‘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이다. 가장 느슨한 지역경제 통합 형태로 특정 국가 간에 무역관세 철폐를 합의하는 협정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대표적 예이다. 이를 발판으로 체약국들이 역외국들에 공동관세율을 적용하는 관세동맹(베네룩스 3국), 체약국간에 원자재와 공장 등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공동시장(EEC) 및 유럽연합(EU)이 머지않아 실현시키게 될 단일통화, 공동의회 등 정치경제 통합 수준의 단일시장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한미 양국 정부는 이미 2007년 4월 FTA를 타결했고, 그해 6월 워싱턴DC에서 협상안에 공식 서명했지만 그 후 3년이 넘도록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로 국회 비준을 꿈도 못 꾸다가 작년 4월 여당인 한나라당의 단독 상정으로 외교통상위를 통과한 후 현재 본회의 통과만 남겨두고 있다.
물론 한미 FTA도 양국 국민 사이에 찬반여론이 팽팽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광우병 쇠고기파동이 보여주듯 반대자들이 거의 결사적이다. 실제로, FTA가 타결되기 하루 전 시위자 한명이 분신자살했다. 반대 측은 FTA가 표방하는 개방, 규제철폐 등 시장만능주의적 경제정책에서 작금의 지구촌 경제위기가 기인됐고, 특히 협상내용 자체가 한국에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찬성 측은 지구촌이 좁아질수록 자유무역은 필연적 추세라며 다자무역체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전형적 통상국가인 한국이 앞으로도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일본과 싱가포르처럼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더 넓게 대외교역을 확대하는 길뿐이라고 반박한다.
지난달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미 FTA 지지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워싱턴주 한인상공회(회장 이수잔)는 3주동안 목표의 절반인 5,000명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 주말 한국식품점 앞에서 개별 서명운동을 벌인 한 관계자는 호응이 별로라고 했다. 서명을 부탁하면 대개 귀찮다는 듯 “다음에 하겠다”며 피한단다. 마켓 옆 식당에서 나오는 여인이 동행한 남자에게 분명히 “여보, 마켓에 좀 들르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서명을 부탁했더니 “아임 쏘리…아이 앰 아 재패니스”라며 마켓으로 들어가 버려 기가 막혔다고 했다.
이들이 서명운동을 외면하는 건 한미 FTA를 반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인사회에(다른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팽배해 있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풍조 탓인 것 같다. 자기 가족이 먹고사는 것과 관계없는 일에는 골치 아프게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각박한 태도다.
한인들도 한미 FTA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지만 한인들 입장은 좀 독특하다. FTA가 한국에 불리하다면 미국에 사는 우리에겐 유리하다. 삼성 TV도, 현대차도 싸게 살 수 있을 터이다. FTA가 미국에 불리하더라도 한인들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다. 하지만, 한인사회의 서명운동은 이런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한인파워를 연방의회에 과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한인들이 서명운동에 호응해야할 진짜 이유이다. 윤여춘(고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