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들 이탈리아 소도시에 몰려와 중저가품 양산
패션에서 ‘이탈리아 제’ 하면 고급품으로 통한다. 수세기에 걸친 장인 정신이 최고급품의 직물, 의류, 가죽제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이탈리아로 몰려가서 중저가 패션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이탈리아 제’라고 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 제’인지 ‘이탈리아 제’인지 구분이 모호한 상황이다. 플로렌스 인근의 작은 도시 프라토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의 반발이 거센 것은 물론이다.
인구 18만 프라토에 중국이민자 수만명 정착
최고급 직물공장 문 닫고 싸구려 상품 공장들로
이탈리아, 플로렌스 외곽에 프라토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중세 도시로 수세기에 걸쳐 세계 최상품급 직물을 생산해왔다. 소위 ‘이탈리아제’(Made in Italy)가 최고의 품질이란 말과 동의어로 통하게 된 데는 프라토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동자들 몇 명이 이민을 오는가 했는데 이후 계속 밀려들어 현재 수만명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정착하면서 최상품 직물 생산지였던 프라토는 저가 의류 생산지로 탈바꿈 했다.
프라토는 현재 유럽에서 중국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합법체류, 불법체류의 중국인 근로자들로 프라토의 3,200여 중국 업체는 하루 24시간 가동된다. 저가의 의류, 신발, 액세서리를 만들어 전 세계 중저가품 소매업소들에 판매하는 업체들이다. 재료는 종종 중국에서 수입해 온다.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 ‘이탈리아 제’ 상표문제이다. 중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제도적 취약성과 편법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노련하게 이용해 제품을 생산해내자 이것이 ‘중국제’인지 ‘이탈리아제’인지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의 전통적 고가품 마케팅은 심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와 함께 프라토 특유의 고풍스런 이탈리아 분위기가 차이나타운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프라토 토박이들로서는 문화적 분노가 없지 않다. 간판에 이탈리아어와 중국어가 같이 쓰이고 중국에서 수입한 식품들을 파는 식품상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무엇보다 시민들을 열 받게 하는 것은 프라토의 토박이 사업들은 쇠락해 가는데 중국인 사업체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현지 이탈리아인들보다도 더 능숙하게 악명 높은 관료주의 체제를 잘도 넘나들면서 사업을 번창시키고 탈세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주민들이 느끼는 중국이민과 경제에 대한 두려움이 위험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이것이 이탈리아의 미래일 수 있다. 이탈리아가 이런 위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프라토 지방 문화 커미셔너인 엘도라도 네시는 말한다.
단순히 탈세만의 문제도 아니다. 현지은행에 의하면 프라토의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송금하는 돈은 매일 150만달러 수준이다. 대부분 의류 및 직물공장에서 번 돈이다. 그 엄청난 이윤이 세금보고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인들이 돈을 벌어 그 지역에 투자라도 하면 좋으련만 버는 대로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고 지방 관리들은 말한다. 사법 당국은 또 중국인 폭력조직 그리고 아마도 이탈리안 폭력조직이 증가세하며 이들이 불법 섬유수입뿐 아니라 인신매매, 매춘, 도박, 돈세탁에 개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전국은 프라토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른 도시들이 프라토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중국의 공격’이란 책을 쓴 실피아 피에라치니는 말한다. 책의 내용은 ‘프론토 모다’ 즉 패스트 패션 경제에 관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터져 나온 것이 이탈리아 당국의 이민단속 강화이다. 지난 봄 불법체류자 고용업소들에 대한 불시단속이 강화되었고 지난 6월 말 이탈리아 검찰은 프라토 일대 100개 업체를 조사하고 24명을 체포했다. 돈세탁, 매춘, 짝퉁제조, 외국에서 제조한 상품을 ‘이탈리아제’로 분류한 혐의 등이다.
중국인들이 프라토를 망쳤다는 주장에 중국인들은 대부분 불쾌해 하고 있다. 경제적 혁신과 현대화에 실패한 프라토를 구해낸 것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프라토에 가지 않았다면 프론토 모다가 생겨났겠느냐?”고 마테오 웡(30)은 말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프라토에서 자란 그는 중국인 이민자들을 위한 컨설팅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이탈리아 사람 일자리를 빼앗았나요? 오히려 중국인들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 주었지요”
프라토 내 긴장국면은 양국 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이탈리아 측은 중국 정부가 불법이민에 대한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고 있다며 양국 간 협정을 통해 불법체류자 색출과 추방에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한다.
프라토 주민들 중에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밀려온 것이 중국정부 차원에서 이탈리아 시장을 악용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라토 상공회의소에 의하면 프라토에서 이탈리아인 소유로 등록된 직물업체는 2001년 이후 절반으로 떨어져 겨우 3,000개 정도이다. 중국인 소유 업체보다 200개가 적은 숫자이다. 중국인 업체는 거의 모두 의류공장들이다. 그래서 과거 직물 생산 및 수출의 중심지였던 프라토가 이제는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수입해 오는 직물의 27%를 받아들이는 지역이 되었다.
프라토 시장실 집계에 의하면 프라토의 전체 인구는 18만7,000명. 이 중 합법적 중국 이민자는 1만1,500명이다. 그에 더해 불법 체류자가 2만5,000명 정도 있는데 그 대부분은 중국인이다.
이탈리아는 관료체제와 보호주의 정책, 그리고 범죄조직으로 서유럽에서는 가장 비즈니스 하기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바닥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경제를 일구어냈다. 대부분 이탈리아 세법에 정통한 컨설턴트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인데 흔히 쓰는 수법이 있다. 개업해서 세무조사관이 신경을 쓰기 전에 폐업하고 같은 장소에서 다른 납세등록 번호로 다시 또 개업을 하는 식이다.
중국인 사업체들에 대해 처음부터 단속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9년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이던 프라토에서 우파 시장이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중국의 침략’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며 유럽연합 차원에서 중국이민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공약해 당선이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발코니에서 생선 말리는 것을 금지하고 상점 주인들은 이탈리어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의 규정이다. 아울러 불법체류자 고용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올 상반기 내내 당국이 불시단속한 중국인 업체는 154개소이다. 3,200여개 중국인 업체 단속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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