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고 커뮤니티 봉사에도 열심이며 심지어 군에 입대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소외되는 주민들이 있다. 귀화하지 않은 채 외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비시민권자 신분의 주민들, 바로 영주권자들이다.
미국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민자들 조차 비시민권자 주민의 투표 참여를 막고 있는 미국의 법과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미국인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미국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비시민권자 주민에게도 투표권을 허용해 온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였다는 것이다. 1776년 건국 당시부터 20세기에 들어선 1926년까지 무려 150년간 미국은 영주권자 등 비시민권자 신분 주민들에게 투표 참여를 허용해왔고 이같은 ‘비시민권자에 대한 투표권 허용’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건국이후 1926년까지 미 전국 22개주가 주나 시 단위의 지역선거에 비시민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허용했고 연방 선거에서도 비시민권자들이 합법적으로 투표했던 역사도 있다.
비시민권자의 투표 참여가 봉쇄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 계기가 됐다. 1차 대전의 전쟁 광기 속에 우파 성향의 미국민들 사이에서 비시민권자에게는 투표권을 허용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대세로 자리잡게 되면서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입증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투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14차와 19차 수정헌법을 거치면서 그간 투표권이 불허됐던 흑인과 여성들에게도 투표 참여가 허용되자 새로 편입된 흑인과 여성 유권자를 대신해 비시민권자들의 투표 참여가 점차 막히기 됐다는 것이다.
연방 헌법도 비시민권자의 투표를 막지 않고 있다. 연방헌법 어디에도 비시민권자 주민의 투표를 불허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연방 헌법은 투표권을 허용하는 유권자의 자격 결정 권한을 각 주와 지역자치단체에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해석이다.
연방 단위의 선거가 아니라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유권자 자격은 결국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국태생 인구 3,800여만명 중 30%에 해당하는 1,260만명이 영주권자이며 전체 주민의 48%가 외국태생 이민자인 캘리포니아는 주민의 27%가 영주권자들이다. 이들은 세금을 납부하고서도,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서도, 군복무를 하고서도, 단지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커뮤니티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피부 색깔과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커뮤니티 구성원이 평등하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보해온 역사가 바로 민주주의의 역사이자 미국의 역사다. 11월 선거에 비시민권자 투표 허용 주민발의안을 상정한 샌프란시스코와 메인주 포틀랜드시의 투표결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상목 /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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