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년간 한국서 각종 봉사활동한 벽안의 노은혜 수녀
▶ 부산 메리놀간호대학, 만남의 집, 미리암센터등 설립
“한국인들의 부지런함과 예의바름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속에서 불과 반세기만에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인들의 저력은 그저 놀라울 뿐 입니다.”
백발에 파란 눈을 가진 노은혜(미국명 패트리샤 노튼, 83) 수녀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메리놀수녀회(Maryknoll Sisters) 소속인 노은혜 수녀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 보냈다. 미 가톨릭 외방선교단체인 메리놀의 수녀들은 1924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처음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며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격심해지자 잠시 미국으로 철수했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다시 진출해 피난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및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노 수녀는 27세가 되던 해인 1954년 스리랑카로 파견돼 10년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봉사한 후 1964년 한국 부산에 파견됐다. 정치·경제적으로 혼란하고 어려웠던 당시 한국에서 그녀는 메리놀 수녀회를 조직했던 메리 허쉬백 수녀가 설립한 부산시 대청동 소재 메리놀병원 부속 메리놀 간호전문학교를 설립, 강의와 학교 운영을 맡아 간호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첫해 입학생 15명으로 시작한 메리놀간호대학은 발전을 거듭해 수백명의 간호사를 배출했다. 그후 학교는 부산가톨릭 교구에 이관됐고 현재는 종합대학인 부산 카톨릭대학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1980년 학교를 부산교구에 맡기고 새로운 사명을 찾아 환경이 열악한 시골지역을 찾아 나선 노 수녀는 경북 울진에서 주민들에게 의료진료가 절실하다고 판단해 보건협동회를 조직했고, 한달에 한번씩 대구나 부산에서 의사진들을 초청해 주민들을 치료하고 부족한 의약품은 직접 공수하는 등 농촌의료봉사에 전력했다. 시골지역에도 한국정부가 운영하는 보건소가 설립되는 등 보건협동회의 필요성이 낮아지자 노 수녀는 1986년 다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수많은 근로자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서울의 구로공단이었다. 노 수녀는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인근에 위치한 광명시 철산동에 ‘만남의 집’을 마련했다”며 “당초 소외받은 도시 노동자들을 위해 교육과 복지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 쉼터 역할을 더하며 계속 발전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명시에서 10년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과 활동하며 그들의 처우개선에 앞장섰던 그는 노동자들의 처우가 점차 개선되고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자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한 중국으로 활동영역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1996년 중국으로 떠나게 된다. 2003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노 수녀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다시금 주목하고 봉사를 결심한다. 그는 “중국에서 돌아와보니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외국에서 온 이들로 바뀌어 있었다”고 전하면서 “특히 외국인 여성들을 후원하고자 동역하던 필리핀 수녀님과 함께 ‘미리암 이주여성센터’를 설립해 동남아시아 각 지역에서 넘어온 이주 여성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 은퇴 후 미국에 돌아와 LA에 거주하면서 고향인 위스칸신주 밀워키를 종종 찾고 있는 노 수녀는 “부산에서 메리놀 간호대학을 운영하던 당시 공부했던 학생들이 지금은 유명 간호대학의 학장으로, 병원의 간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뿌듯해 했다.
32년을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들을 위해 봉사한 그녀에게 한국인들의 단점이 뭐냐고 물었지만 한국인들은 좋은 점만 있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아직도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제자들과 만나 한인식당에서 사먹거나 가끔은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한다”는 노 수녀는 아마도 한국인이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여전히 노숙자,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뱅크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봉사와 헌신, 그 자체다. 그 삶속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다.
<김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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