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 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속에라도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르는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 그림자를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 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유종인(1968 - ) ‘저수지에 빠진 의자’ 전문
낡고 다리까지 부러진 의자 하나가 저수지에 빠져 있다. 그 의자에, 물도 등을 기대고, 하늘도 산 그림자를 앉히고, 물고기도 둥지인 양 모여든다. 의자는 의자이기를 거부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대자연이 쉬어갈 수 있는 더 큰 의미의 의자가 된 것이다. 무언가가 되고자 쫓기던 내 마음도 그 의자에 앉아 쉬게 하고, 내 자신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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