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1976년 뉴질랜드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담을 갖게 되었다. 이때 영어를 쓰는 뉴질랜드 총리를 통역하기 위해 함께 한 한국 통역관의 실수로 한바탕 소동이 났던 일이 있었다. 한국 다음에 중국 일정이 잡혀있는 그에게 박 대통령은“ 중국에 가거든 북한이 더 이상 도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중국이 북한에 얘기해 주면 고맙겠고 만일 그래도 북한이 다시 도발 행위를 한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북한의 도발 행위가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통역관이 “북한이 도발할 경우 만일 중국이 이를 지원 한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라고 영어로 얘기해서 듣는 이들은 마치 한국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 아니냐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이처럼 통역은 간단한 것 같아도 이렇게 복잡 미묘한 것이다.
다른 얘기 하나. 레이건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멕시코 시를 방문하였다.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가 연설하는 동안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니 몇 사람만 박수를 치는 것이다.
그의 연설이 끝난 후 다음 연사는 유창한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스페인어를 모른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기 싫어 말이 웬 만큼 끝날 때마다 크게 박수를 쳤다. 그때 곁에 앉았던 한국 대사가 그를 쿡쿡 치면서 “나 같으면 박수 안 칠거야. 저 사람이 지금 당신이 한 연설을 스페인어로 통역하고 있거든”이라 했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의 또는 타의에 밀려서 통역 아닌 통역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기는 우리 모두 처음 미국에 와서 TV에 나오는 단어들 몇 개 빼고 못 알아들어 그림만 쳐다보고 있지 않았던가. 세상에 하루아침에 멀쩡한 바보 되는 것 시간문제구나 생각했었다.
며칠 전 한국 그로서리에서 한글을 읽지 못하는 미국 여자가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을 보고 내 옛날 생각이 나서 달려가 도와주었더니 너무 고맙다며 한국식 절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90도 숙인다.
한 번은 어머니와 유럽을 여행했었다. 요즈음은 한국 여행사가 있어 너무 편리하지만 그 당시 관광 안내원은 빠른 영어 설명과 함께 시간이 없다며 달려가니 우리는 뒤따라가기 바빴다. 그래도 어머니는 1분마다 허리를 쿡쿡 찌르시며 “예, 저 여자 뭐라고 하니?” 그리고 어느새 따라 붙었는지 영어를 아주 조금 하는 스페인 할머니가 영어로 “저 여자 뭐라고 하니?”가 계속되어 그 잘하는 영어와 한국말을 해대느라 아주 혼났던 기억이 난다. “나, 정말 통역 시키지마 엄마.”
내 의사를 상대방에 그냥 정확히 전한다는 것도 힘든데, 더구나 제3자의 깊은 뜻을 풀어서 도마 위의 생선처럼 당황한 얼굴로 통역을 하는 경우는 정말 난처할 것이다.
옛날 청와대에서는 리무진 차 안에서의 통역은 차통, 박물관에서의 통역은 박통, 또 동시통역은 동통(똥통), 식사 통역은 식통, 골프 통역은 골통이라 줄여 불렀다 한다.
단순히 말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통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술 메스를 잘 다룬다고 외과 의사처럼 수술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이치와 같다.
우리가 오늘도 주위에서 갑자기 손을 끌며 ‘저 사람 뭐라는데, 얘기 좀 해줘’라며 번역 또는 통역을 원한다면 내 능력의 한도에서 성심을 다해 도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더 보람차지 않을까.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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