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서울은 무척 더웠다고 한다. 최고온도가 기록을 경신하고 습하고 무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된다는 한국 소식이 들리던 어느날 서울에 계신 친정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아니고, 내손자들 다 죽게 생겼다.” 뭔소리인가 했더니 올케가 선풍기를 켜놓고 얘들을 재운다는 것이다.
남동생은 몇년 전 금발의 아이리쉬 아가씨와 열렬한 연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고 한국에 살고 있다. 동생과 올케의 직장이 서울이라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은 달에 한번 이런저런 핑계로 동생네를 다녀가신다. 게다가 2년전 쌍둥이 손자가 생기고는 부모님의 동생네 방문이 더욱 잦아지고 그 기간도 길어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서울행이 늘고 조카들이 커갈수록 올케의 자녀 양육법과 살림살이에 대한 불평을 하나둘씩 언급하던 엄마는 급기야 무더운 여름 선풍기를 켜놓고 당신의 금쪽같은 손자들을 재운다고 저 난리이신거다.
어느 티비프로에서 선풍기를 틀고 잠을 자면 사망할 수 있는지 실험을 했었다. 결과는 ‘선풍기를 틀고 자도 사망하지 않는다’였다. 물론 한방향으로 장시간 쐬었다면 호흡곤란과 저체온증으로 위험하다고는 해도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괜찮다는 올케와 절대 안된다는 친정엄마간의 팽팽한 이견차이는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타관 결혼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충고들을 하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결혼한 나는 신혼초.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라니. 문화가 다르다 보니 그 차이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음이 섭섭함으로 변해 세월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있다.
얼마전 출장간 올케 대신 손자들을 돌보시는 엄마께 안부전화를 했다. 꽤 선선해져 선풍기가 필요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야 밤에도 두발을 뻗고 주무신다니 당분간 엄마의 선풍기 걱정은 묶어두어도 될 듯싶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했던가.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직장 다니느라 아이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는 올케를 보니 내 모습이 보여 마음이 짠하다.
(상항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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