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오라는 모임이 많아 몸은 바쁘지만 오랫만의 만남이 있어 즐겁다. 몇 달 만에 혹은 10년 만의 만남도 있어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뛴다. 하지만 꽃단장에 차려 입고 나다닐 일이 적은 미국에서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되니 평소 청바지에 백팩을 즐기는 내게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고민을 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게다가 마음 먹고 장만한 원피스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반가운 마음에 덥석 받은 초대장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싶은 소심한 기분마저 든다.
이런 고민을 자칭 타칭 외모 꾸미기에 센스있다는 친구에게 토로했더니 S사 투피스에 C사 가방은 기본이라며 핀잔을 준다. 거기에 유행 타는 디자인은 가품이 제격이니 하나쯤 사라는 사족까지 덧붙인다. 사실 나도 짝퉁 가방이 있었다. 흔해서 국민가방이라 불리는L사 제품으로 싼 가격에 명품(?)을 갖는 호사를 누렸었다.
한 번도 가품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림에 소질이 있던 딸 아이가 디자인 공모전에 당선돼 상당한 금액의 상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주최 측은 그 디자인을 회사 로고에 쓰는 조건으로 딸 아이에게 돈을 지불하고 사간 셈이다. 그 후로도 여러 번의 대회에서 상을 받은 아이는 그 때마다 자기 그림을 사용해도 된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상금을 받아 왔다. 당연히 받는 상금이려니 했는데 어느 날인가 고지식한 딸 아이가 짝퉁에 대해 남의 디자인을 훔쳐 그럴듯하게 만들어 파는 자체가 불법이며 가품임을 알고 사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걸 듣고 그날로 나는 짝퉁 국민가방을 미련없이 버렸다.
요새는 가품을 공개적으로 판다. 또 알면서도 구입한다. 특A급이라고 해서 가격도 만만치 않다. 소재와 디자인등이 진품과 거의 흡사해 웬만한 전문가도 식별이 어렵다고 한다.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갖고 싶은 마음을 내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디자이너가 각고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 피워 낸 명품이라는 꽃을 나도 소유하고 즐기고 싶다. 하지만 조화를 꽃병에 꽂고 향기를 맡는 시늉을 하는 어리석음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보는 이는 몰라도 맡는 나는 알지 않는가. 그렇다고 가짜 꽃이 향기 그윽한 진짜로 바뀌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상항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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