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조카가 놀러왔다. 겨울 방학을 맞이해 고모집에 한달 조금 넘게 있다 간다고 했다. 조카는 참 성실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 데 알아서 가져온 숙제를 날마다 꼬박꼬박하고 심심하니 티비를 보라고 해도 숙제부터 해야 한다고 안 본다. 거기다 자기 전에는 항상 일기를 쓰고 식성도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도대체 올케가 어떤 재주를 부렸기에 이리도 잘 크고 있단 말인가. 거기다 조카는 다재다능하기 까지 하다. 축구 야구 수영 등 못 하는 운동이 없고 수영은 경기도 대표로 나가 메달도 받았다고 하니 실력이 아주 대단한 듯하다. 심지어 영어도 잘 한다. 게다가 알고 있는 상식도 많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냐고 물어보니 그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배운거란다. 요새 학원에선 상식도 가르쳐 주냐라고 묻자 상식이 아니라 역사 학원이 있다고 했다. 학원 스케줄을 묻자 수학, 영어, 과학은 기본이고 축구, 야구, 수영, 피아노, 미술과 역사도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거기다 구몬 선생님도 집으로 온다고 했다. 듣기조차도 숨이 찼다. 이 중 수학과 영어, 과학, 수영, 피아노는 일주일에 한번이 아니라 2-5번까지 간다고 하니 조카가 도대체 이 스케줄을 어떻게 다 소화해내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조카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냐고 아무리 물어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미국에 왔으니 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고모에게 말하라고 해도 말을 안 한다. 이유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는 주말까지 학원 스케쥴이 가득 차 놀아본 적이 없어서 뭘하고 놀아야 하는 지 모르겠단다. 이제 곧 4학년이 되는 이 어린 아이가 벌써 어떻게 노는 지를 잊어 버리다니 가슴이 막막해진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조카를 통해 더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됐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올케를 탓할 수 있으랴. 나조차 한국에 있었다면 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나마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 살아서 그런 무한 경쟁에서 아주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 뿐인 것을...
착하고 다재다능한 우리 조카가 한국의 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그저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 조카를 향한 측은함과 안타까움에 미국에 있는 동안이라도 열심히 놀다가게 해야겠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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