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화장대 앞에는 갓난쟁이 주먹만한 크기의 호두가 걸려 있다. 보통의 호두와는 다르게 크기도 크거니와 모양새도 독특하고 범상치 않은 분위기로 표면에 니스를 발라 반지르르한 광택이 돌고 그 끝에는 앙증맞은 전통 매듭까지 우아하게 매달아 놓았다. 누가 보더라도 꽤 값어치가 나가는 장식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핸드폰 걸이 치고는 너무 크고 단순한 벽걸이 장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이 호두를 처음 받아 보았을 때 그 용도가 심히 궁금해지는 그런 물건이었다.
사실 이 호두는 올해 초 한국에 계시는 시댁 어르신께서 새해 신수를 보러 가셨다가 태평양을 건너 떨어져 사는 막내 조카 내외의 점괘가 그다지 좋지 않게 나와 제법 큰 돈을 지불하고 받아 오신 부적이다.
이런 사연의 부적이 빨간색 한지에 고이 싸여 우리 집에 배달되던 날 대명천지에 말도 안되는 물건이라며 남편은 질색을 했고 당장이라도 호두를 깨버릴 기세였다. 하긴 나도 낼 모레 아흔이 되시는 어른을 겁을 주어 솔깃하게 홀려 돈을 갈취한 도사 선생(!)의 상술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평소 조카 내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유별나신 시댁 어른께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조랑 조랑 크고 작은 걱정 거리를 제공해 드리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도 들었다.
그간 몇 번이나 박살이 나 휴지통으로 갈 뻔한 위기를 넘기고 뭔가 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 께름칙한 마음에 서랍 한 구석에 쳐박아 두었었다. 그런데 지난 달 다시 꺼내 화장대 앞에 걸어 둔 것이다. 점이나 미신에 대한 강한 이성적 반감보다 조카 며느리 내외의 안위 걱정에 차곡차곡 모아 두셨을 쌈지돈을 아낌없이 털어 내어 주신 시어른의 마음이 감사하게 느껴져서였다. 부적의 불가사의한 힘이 아닌, 어떤 것으로나마 무탈을 빌어 주신 그 분의 마음의 힘으로 우리 내외의 건강을 지키고 액운을 막아 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무튼 오늘도 아침 저녁 오가며 보게 되는 저 호두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사실 나도 많이 궁금하다.
(상항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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