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주 어려서부터 봄이 되면 나물을 캐러 들로 나갔다고 했다. 친구들과 바구니 하나, 나물 뜯을 칼 같은 것 하나를 쥐고 나가 나물을 뜯기도 하고, 꽃도 따서 목걸이 같은 것도 만들며 놀고는 하루를 다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그 수많은 들판의 풀들 중 먹을 수 있는 나물과 아닌 것을 가르는 재주는 수 세대를 걸쳐 내려온 나름의 노하우일 것이다.
한국에 살 때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가면 듣도 보도 못한 그 산나물 이름을 척척 대는 어머니가 참으로 신기했다.
아이와 동네 야산을 산책하다, 나도 나물이나 뜯어볼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러보니 마침 열무처럼 생긴 풀이 눈에 띄었다. 맛이 정말 열무와 같을까 궁금해 하나를 따서 씹어보았는데, 맛도 정말 그럴싸했다. 일명 ‘야생열무’를 발견한 기쁨에 그런 것이 또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저런 풀들이 눈에 띄긴 하는데, 무엇이 먹을만한 나물인지 도저히 식별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들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때를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보면 최소 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을 지켜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학교에서는 백인이 세운 300여년 역사를 미국 역사의 전부인 양 가르치지만, 거의 기록되지 않았고 기억되지도 않는 만 여년 세월의 가르침과 지혜가 있었다.
매일 음식하는 것을 업으로 사는 사람의 눈으로 봐서인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땅이 자연스럽게 키워내는 식재료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300여년 전 온 이들은 제 고향 생각이 간절해, 들꽃도 피고 나물도 났을 들판을 대부분 밀어내고 힘들여 잔디를 심어놓았다.
원래 살던 이들을 내몰고 백인들은 땅을 얻었지만, 오랜 세월 이 곳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쌓아온 지혜는 모조리 잃었다. 그것은 들판에 핀 아름다운 꽃의 이름을, 나를 먹여살릴 들판의 먹거리들을 다정하게 알려줄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그 모든 어머니가 사라진 것과 같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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