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달구어진 후라이팬에 기름을 한 바퀴 휘이익 두르고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계란을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어 투명한 흰자가 하얗게 익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밥을 한 공기쯤 덜어 이리 저리 흐트러뜨리듯이 고루 볶은 후 짭짜름한 진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조리법이라고 소개하기에도 무안한 이 계란밥을 언제 처음 먹었는지, 누가 계란밥이라고 이름 지었는지 기억은 없다. 그냥 계란밥은 처음부터 계란밥의 이름으로 대학 시절 엄마와 떨어져 지내며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전기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를 줄 아는 게 전부였던 시절부터 웬만한 음식은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된 지금까지 별 다른 재료가 필요없이 한 끼를 뚝딱 때울 수 있는 소박한 내 밥상의 단골 메뉴다.
딸 아이가 젖병을 떼고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을까. 피치 못할 일로 가족의 식사를 챙겨 주지 못하고 한나절이나 집을 비워야 했던 적이 있었다. 볼 일을 마치고 조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부엌 살림이라면 숟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만 아는 남편이 딸 아이에게 계란밥을 해 먹이고 있는게 아닌가.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던 계란밥을 보자 신기하기도 하고 또 앞치마까지 챙겨 두른 남편의 모습에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 자기도 이거 할 줄 아네.”라며 호들갑을 떨자 남편은 “나도 이런 거 할 줄 안다아이가.”라며 무심하게 너스레를 떤다. 딸 아이는 고소한 참기름에 참깨까지 뿌려 고슬하게 비벼 놓은 것을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음식을 받아 먹듯 남편의 우악스러운 숟가락질에도 납죽 납죽 잘도 받아 먹고 있었다.
그날의 칭찬 때문이었는지 이후부터 우리 집에서는 딸이 이름 붙여 에그밥이라 불리는 그 계란밥이 남편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요리(!)로 무뚝뚝하고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남편을 흔쾌히 부엌으로 끌어 들인 일등 공신 음식이 되었다.
이제는 살림 경력 15년에 밥은 물론이거니와 배추 한 박스 정도는 거뜬하게 먹음직스러운 김치로 변신시키는 제법 내공이 쌓인 주부이지만 내 남편이 만들어 내 딸이 즐겨 먹는 ‘단순한 재료로 만든 대단한 음식’ 계란밥이 내게도 제일 맛있고 그리고 고마운 음식이다.
(상항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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