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날 이른 아침 송별회를 했다. 이른 아침의 약속이라 우리도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1시간 떨어진 가게 앞의 식당으로 갔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 7명이 여렵게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일할 때의 모습과는 달리 모두들 한껏 멋을 부리고 왔다. 찰랑찰랑 기분좋은 방울 소리를 내며 왔다.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둥근 테이블에 빙 둘러앉았다. 일터가 아닌 곳에서 특별한 데이트처럼 만나니 모두들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다. 나도 덩달아 흐뭇했다.
20년 동안 우리 가게에서 일을 해온 엘리샤가 자신의 건강과 가정 문제로 그만두게 되어 그녀를 보내는 자리에 모두를 불렀던 것이다.
20년 전 어느날, 파란 하늘에 하늘하늘 피어오른 코스모스처럼 그녀가 다가왔었다. 일자리를 구한다고. 성실하고 상냥해 보여 채용을 했다. 경쾌하고 시간에 철저했다. 일하러 오는 것을 소풍오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 같았다. 봉사하러 오는 사람 같았다. 나를 배려하고 돌보기 위해 온 위로자 같았다. 어쩌다 내가 바삐 일에 빠져 있을 때면 어느새 의자로 데려다 앉혀 물 한컵을 내밀며 한숨 쉬게 만들곤 했다. 참으로 자상하게 배려할 줄 아는 내 친구였다. 그 친구가 이젠 움직이면 뚜뚜두둑 온 뼈마디에서 쉬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자신의 소리에 순응하기로 한 것이다.
아침을 먹으며 회상과 감사의 말들을 서로 나누었다. 입가가 아닌 눈가를 닦았다. 음식을 씹는 입안이 맛을 느끼기보다는 터지려는 소리를 숨죽여 가며 서로의 마음을 음미하고 있었다. 웃고 울며 코를 풀어대는 눈가가 빨갛다. 수 백번을 지나 다녔지만 처음으로 왔다는 식당에서 푸짐한 음식을 앞에 놓고 희안한 모습을 연출하긴 했지만 모두 그 어느때 보다 값진 식사를 한 셈이다. 사진을 찍고 뜨거운 포옹으로 헤어졌다. 만남은 헤어지기 위한 시작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쨌든 20년을 함께 했던 친구와의 이별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이별연습이 없진 않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슴속에 묻어 드렸고 오빠와 친구들도 보냈었다. 뿐만인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서로 등을 돌린 친구와의 또다른 이별도 있었다. 멀리 떠난 이별이나 보기 싫다고 외면했던 이별이나 다를 것이 무얼까. 피치 못할 이별도 많아질텐데 싫다고 멀리 잘라 버리는 자초하는 미움의 이별만은 이젠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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