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원
정법사 주지
신앙생활은 이론이 아니다.
말 그대로 믿음의 생활이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는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신앙도 맹목적인 신앙행위 때문에 자신이 믿는 종교를 욕되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옛 선인은 “도는 알고 모르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훌륭한 인격자란 누구를 말하는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관계없이 정의를 정의라고 말하고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사람, 옳다고 믿는 것을 옮은 것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훌률한 인격자이다.
또 그른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그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악한 것은 언제라도 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그른 것을 옳은 것처럼 말하거나 옳은 것을 그른 것으로 말하는 것은 변명이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사람이다. 또 이해관계 때문에 악을 보고서도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해관계에 밝은 사람일 뿐 올바른 인격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의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이 아무리 정의를 말하고 불의를 말해 보았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전에 불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악행을 하면 법답게 산다고 말할 수 없고, 사람의 탈을 쓰고 비인간적인 일을 일삼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옛 말에도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다. 말로만의 정의, 말로만의 불의는 희론 일 뿐이다. 보살행은 정의로운 행동이요, 불의를 보고 배척하는 행동이다.
불교 사원이 각처에 많이 있고, 기독교의 성당이나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다고 그 사회가 극락이 되고 천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천당이나 극락은 정의와 진리가 지배하는 세상이지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많다고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전에 진실을 버린 사람은 아무리 보리수 아래 앉아 있어도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수행자가 깨닫음을 얻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진실을 생명처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은 진실함에 확고한 태도를 갖는 것이고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확실히 그렇다고 받아들여 그 확실한 것을 자기의 몸으로 실천하는 행동이다.
머리로는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확실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개인적으로 타락하지 않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나 지혜로운 사람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역할을 다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사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작은 모래알이 모여 해변이 되고, 사막도 된다.
작은 세포가 모여 한 몸이 되듯, 작은 것은 이렇듯 위대하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자기 자신을 가장 작다고 느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가장 작다고 느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 가장 보잘 것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니며, 가장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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