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아래 동생들의 자녀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이모라고 부르고 고모라고 불러주는 사랑스런 아이들. 내 자식과는 또 다른 예쁜 아이들. 자주 보진 못하지만 만나면 팔짱부터 끼고 얼굴을 부비며 ‘이모, 이모..’ ‘고모, 고모..’ 한다. 막무가내로 파고들며 안기는 다 큰 아가씨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결혼을 할 사람이기 때문에 꼭 만나야만 한다며 약속을 잡았다.
믿음생활 잘 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실한 청년들이었다. 이모님으로 고모님으로 만난 자리가 참으로 흐뭇했다. 어른을 대하는 몸가짐이 바르고 사랑하는 여자를 세심하게 보살피는 진중한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두 달 차이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 두 조카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슬기롭지 못 하면 이같이 흙 묻은 알토란 같은 총각을 사랑의 눈으로 알아보고 마음에 담기가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엔 멋진 외모는 기본이고 재력 학력에 부모의 재산까지 따져가며 결혼 상대를 고르는 풍조까지 있다는데 말이다. 조카들이 같은 방향을 보며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짝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웃음 속에 파묻혀 있는 조카들을 보며 나의 신혼시절이 생각났다. 남편이 미루고 미루던 군복무를 하느라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우리. 남편 대신 연로하신 시외할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었는데, 넉넉지도 못한 집에 홀로 들어 온 외손주 며느리를 할머니는 참으로 정성스레 챙겨 주셨다.
안쓰러워서라기보다는 할머니의 성품이 워낙 지극하고 지혜로우셨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출근하는 내 호주머니 속에 넣어주셨던 따끈하게 달군 작은 돌멩이는 물론, 밥상에 올려 주시던 갖가지의 제철 나물 반찬들. 처음 맛보는 가자미 식혜에 주먹보다 더 큰 이북식 김치 만두. 외손주를 키워 낸 그 진한 외사랑을 온통 나에게 쏟아 주신 것이었다.
결혼으로 인하여 나의 시외할머니가 되셨으니까 결혼은 지경이 넓혀지는 것이다. 새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익히며 자신과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다 삭혀 내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이 되어 버리는 아주 특별한 만남. 아직도 내 맘 깊은 곳에 감미로운 옹달샘처럼 살아있는 할머니와의 추억들은 많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 생각만 하면 진한 그리움에 코끝이 맵고 아린다. 그래서 결혼은 아름다운 만남과 추억을 주렁주렁 매달리게 하는 싱싱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카들아, 부디 좋은 나무를 심고 잘 키워 내길 기도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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