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면 누구나 환자들이 예약한 시간을 맞춰 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앞에 온 환자의 치료가 지연되면서 부득이 다음 환자를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맙게도 환자들이 잘 이해해주어서 큰 문제없이 지내왔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대기실에 직접 나가보면 예전 풍경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테이블에 놓인 여성지나 골프 매거진, 한국 일간지 등이 인기이더니(필요한 페이지를 찢어가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거의가 각자 손 안에 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기 보는 비디오’라는 DVD처럼 스마트폰을 ‘환자 보는 전화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스마트폰, 정말 스마트하기도 하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이메일 답장을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한다. 지구 끝 어디라도 문자를 하고 카카오톡을 하고 네이버 라인을 하고 스카이프와 탱고를 하고 자기 사업장 내부의 게으름 피는 직원을 비디오로 감시한다. 치아 화이트닝(미백)을 받고난 뒤 유려해진 자기 입 안을 카메라로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고 프리웨이 교통을 살피고, 믿지 못할 남자친구(오빠라던가?)가 자기 몰래 어디를 돌아다니는지도 추적한다. 4~5인치 작은 스크린 안에, 내가 사는 세상이 컴팩 사이즈로 재현되고 꿈 속 환상이 실재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스마트폰, 신기하기도 하지! 이제 ‘심심하다’는 단어는 영영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스크린에 취해서 심심할 새가 없다. 라디오도 TV도 전세계 어느 나라 방송이든 클릭만 하면 다 나온다. 에티오피아 현지 방송의 암하리크 언어도 들어보고 아랍 에미레이트 가수도 구경한다.
대기실에 앉아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던 환자의 이름을 부르면 잠시 ‘정지’된 표정을 볼 수 있다. 스크린 세상이 현실 세계로 전환되는, 순간적 공황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 그 표정의 이름은 멍! 이다. 짧은 거리의 물체에 집중하던 눈이 갑자기 그보다 떨어진 거리의 간호사 얼굴을 보려니 초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두 눈을 몇 번 깜박거리며 일어난다.
스마트폰, 고맙기도 하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이제 곧 보게 될 의사의 평을 조회하기 위해 살짝 옐프(yelp) 사이트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가 있을 때는 손가락 끝 클릭 안에 해답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남이 이미 일목요연하게 올려놓은 답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서 카피-페이스트 하면 그뿐이다. 고리타분하게 책 먼지 나는 도서관엘 왜 간단 말인가!
현대인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기억할 때, 정보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나중에 어디 가서 찾으면 되는지 그 경로를 기억하려는 경향이 압도적이라고 최근 리서치가 밝히고 있다. 그러니 스마트폰은 고맙다. 뭣 하러 복잡한 머리를 애써 움직인단 말인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아니 요즘은 터치폰이니 손끝을 부드럽게 대기만 하면, “옙!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하면서 램프 의 요정 지니처럼 친절하게 해결해 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천천히 하는 일을 못견뎌한다. 알레그로-비바체. 점점 더 빠르게 살아가고 즉답형이 아닌 느림을 짜증낸다. 치아 임플랜트를 위해 필요로 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힘들다. 모두가 더 빨라진 4G 스마트폰 중독 환자가 되었나? 광대무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들의 빨리 빨리!가 아무래도 좀 웃길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