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17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와 대신들을 경운궁에 가두었다. 일본군대의 폭압적 공포분위기 속에서 8명의 대신중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이상 을사5적)의 찬성으로 을사늑약을 강제로 가결시켰으며 이 문서는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서명하였다.
이 늑약의 내용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으로 일본은 이 늑약으로 주권국을 짓밟고 곧이어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1910년에는 불법적인 한일병합조약을 강제적으로 체결함으로써 500년 독립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을 멸망시켜 36년간의 일제통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하여 지금 한민족이 남북분단이라는 미증유의 고통을 당하는 원천적 원인을 일본이 제공하게 되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열사 기념관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베넨호프를 방문하면서 우리 민족 근대사의 뼈아픈 비극적 고통과 이준, 이위종, 이상설 세 열사의 숭고한 애국적 투쟁 역사를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악랄한 일본제국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회의장 밖에서 각국 대표들을 한사람씩 붙잡고 일본의 만행과 대한제국의 독립국임을 피를 토하듯 절규했던 이 애국 열사들이 밟았던 차가운 붉은 벽돌 광장은 그분들의 피와 눈물이 새겨진듯하였다.
1907년 7월14일은 프랑스혁명 기념일이라 만국평화회의가 하루 정회되었고 이날 오후 이준 열사는 베넨호프에서 멀지 않은 한 작고 초라한 호텔방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일제는 이준열사가 자결하였다고 그의 죽음을 왜곡하였으나 7월13일까지 베넨호프에서 각국의 외교관들에게 대한제국의 독립국임을 호소하고 투쟁하였으며 다음날인 7월15일에도 그러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던 열사께서 어찌 자결하신단 말인가.
작금의 일본은 우리나라 땅인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억지 부리고 남지나해의 따오위다오 열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부리며 옛 러시아 땅인 쿠릴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억지 부려 모든 이웃나라의 경멸과 비웃음을 받고 있다. 성노예로 잡아간 우리 선조 누이들이 아직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울분이 부글부글 끓어오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못하며 이 지울 수 없는 국가적 과오를 자손만대로 물려주는 일본의 그릇된 양심이 딱할 뿐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강점했던 땅을 전쟁이 끝난 지금의 대명천하에서 아직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양심은 썩다 못해 먼지가루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이제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다 잘살게 되었고 나라의 격은 돈으로만 평가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독일은 나치의 과오를 국가적으로 참회하고 끊임없이 반성하며 다시는 그러한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후손들에게 끝없이 교육시킴으로서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를 반성할 마음이 없으며 시대착오적 오만을 부리고 있으니 근본적으로 국가적 양심선언을 하기 전에는 일본이 앞으로 국제 정치, 경제적으로 왕따와 함께 쇠락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본의 운명은 날로 일어서는 대한민국에 의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규용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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