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인의 신앙
▶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 이따끔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거라지 세일이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심심찮게 길가나 집앞에 ‘Garage Sale’ 사인이 붙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사를 가거나 집 정리가 필요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것들을 차고 앞이나 집앞 잔디밭에 내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판다.
그냥 준다 해도 고맙지 않을 오래된 고물 잡동사니들이 있는가 하면,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꼭 필요한 물건이 나올 때도 있다. 오래 안 입다가 세탁하여 내놓은 옷가지, 쓰지 않는 그릇이나 화병, 먼지 낀 그림액자 등이 주를 이룬다. 조금 손 보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앤틱 가구들이 눈에 띌 때도 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쓰지 않고 모아놓은 옷이나 신발, 가구, 세간들이 옷장 안이나 차고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잠자는 일이 일어난다. 요긴하게 쓸 것 같아 구입했지만 한두 번 사용한 후 놔두다 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생각보다 맘에 안 들어 처박아 놓은 것도 있고, 반대로 너무 좋아해 아껴 쓰다가 그만 유행이 지나 버린 것도 있다. 몇 년 후 사이즈가 맞지 않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신주단지마냥 모셔놓을 의류도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책을 아끼는 나는 심지어 학창시절의 몇 가지 책이나 노트를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알고 보면 이것마저도 일종의 ‘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세상이치가 ‘고이면 썩게’ 되어 있다. 웅덩이의 물만이 아니다. 재물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물건도 나눠가며 써야 썩지 않고, 마음도 활짝 열고 이웃과 소통해야 병이 들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아픔과 불만, 미움과 자책, 심지어 실패와 좌절의 회한마저도 과감히 씻어내 버릴 줄 알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쌓아두면 우울증, 불안, 강박증의 요인이 된다. 심리상담가나 정신과의사를 찾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스로 버리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힘들어 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분들의 역할 아니겠는가.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우리 집사람은 쌓아두고 지내는 꼴을 못보는 성미다. 옷가지 뿐 아니라 가구도 안 쓰는 것은 잽싸게 이웃에게 주든지, Goodwill 같은 데 보낸다. 금년 초에도 그간 버리지 못하고 차고에 쌓아놓은 것들을 아내가 사람을 불러 차에 실어 보냈다. 혹시 내가 있으면 잔소리 할까 봐 일부러 내가 일하는 주중에 차고정리를 했다. 혹시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약점을 아내가 알고 정리해 주니, 체한 것이 뚫린 듯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집뒤 정원도 마찬가지다. 장미는 일년에 한 번씩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밑둥부터 잘라 주어야 하는데, 그간 아까운 마음에 쳐 주질 못해 꽃송이가 탐스럽지 못했다. 이걸 큰 맘 먹고 금년 초 쳐 주었더니 몇 년만에 우리 집 정원이 장미꽃으로 가득 찼다. 이런 것이 버려야 얻게 되는 축복의 원리일까? 마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삶 역시 이따끔 쓸모없는 것들을 정리하는 ‘거라지 세일’이 필요한 것 아닐까. 약간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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