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애나폴리스 10마일 경기가 있었다. 경기시작이 아침 7시라 자명종을 5시에 맞혀 놓았다. 경기전날 충분한 수면을 위해 일찍 취침해서인지 자명종이 울리기전에 일어났다. 아내도 일어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빠, 밖에 폭우가 내리는데 왠만하면 뛰지 말지 감기 들면 어떻해요.” 정말 밖을 내다보니 칠흑 같은 캄캄한 밤 이었고, 비는 억수같이 내리는 것이었다. 매번 경기 전에는 다리가 천근, 만근 더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러하였다. 이번 경기는 그냥 포기해 버릴까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라토너가 이런 비정도로 겁먹지 않아”하고 아내에게 큰소리 치고 집을 나섰다.
경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멀지않은 주차장에 도착하니 조금씩 한명 두명의 러너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경기시작 30분전이 되니 주차장에 차가 가득 찼다. “이 퍼붓는 빗속에 미친 사람들도 많구나..” 나 혼자 중얼거리며, 내 나름대로 우천 시에 하는 복장(쓰레기를 담는 비닐봉투에 구멍을 내어 머리가 나오게 하는 것)을 하고 차에서 내려 출발점을 향하였다.
예전에 춘천마라톤에 참가할 때는 시차적응을 위하여 10일전에 병원을 닫고 한국에 미리 도착하여 컨디션 조절을 하였다. 그 당시 어머님께서는 걱정이 되셔서, “동네에서 살살 하지, 무슨 살판이 났다고 그 멀리까지 가서 뜀박질이냐?”하고 말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였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뛰는데 미쳐서 앞뒤가 분간되지 않았다.
얼마 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에베레스트 원정을 등반하는 과정을 시리즈로 방영하는 것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 등반자 중 한명은 평생 우편배달부였는데 퇴직하면서 받은 돈 7만 달러 전부를 평생 동안하고 싶었던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위해 투자하여 몇 개월 동안의 훈련을 거쳐서 생명을 걸고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접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자기가 평생 동안 저축한 돈을 그리고 자기 생명까지 걸고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정말 미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을 일 같다. 내 나이지금 50대 후반, 돌이켜 보면 무언가 미친 듯이 하고 있었던 추억들만 이내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중학생 시절 낚시를 너무 좋아해서 아무 준비도 안하고 밤낚시 가서 밤새도록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새우잠을 자던 때, 고 3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준비를 위해 밤 열차 속 희미한 불빛 안에서 플랜폼 가로등을 지나갈 때 마다 영어 단어 한 단어 한 단어씩 외우던 때, 대학교 입학 후 첫 데이트를 시작할 때, 여학생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정신없이 바이런의 시를 외우고 다녔을 때, 여행을 좋아해서 결혼 초기 가족들과 같이 유럽을 종행무진 했을 때, 정말 무언가에 미치지 않는다면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상한 것은 내가 과거에 정신없이 몰두했던 일들은 1, 2년이 지나면 바람처럼 지나갔지만, 뛰는 것만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상한 매력이 있다.
지난 주말에도 앞으로 5주후에 있을 포토맥 리버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전등을 비춰가며 15마일 장거리 훈련을 하였다. 이번에 34번째 도전하는 마라톤이지만, 이번에도 26.2마일 뛸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과 동시에 야릇한 흥분의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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