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인가요?"
“아니, 태양을 경배하는 곳이에요. 저기 서 있는 높은 돌이 태양을 향하고 있잖아요? 이제 곧 태양은 저 바위 위로 솟아오를 거예요." 바로 그때에 에인젤은 먼 동북쪽 하늘에서 한줄기의 여명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동안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면서 저 멀리 땅 끝에서부터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를 등지고 우뚝 서 있던 일석주(一石柱)와 삼석탑(三石塔)의 검은 윤곽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쪽 돌기둥의 처마 도리는 햇볕을 등지고 시꺼멓게 서 있었고, 그 건너에는 불꽃 모양의 거대한 태양석이 보였고, 그 중간쯤에 제단석이 나타났다. 이윽고 밤 바람이 자고 들에 패인 컵과 같이 오목한 곳에 고인 조그만 물웅덩이의 잔물결도 잠잠해졌다. 동시에 동쪽의 움푹 내려간 계곡의 가장자리에 한 개의 점이 계속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태양석 건너의 계곡에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도 뭔가 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까 엎드린 기둥 위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서 그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오른쪽 삼석탑 밑에 또 하나가 사람 모습이 나타났다.
토마스 하디의<더버빌가(家)의 테스>의 주인공 테스가 불가항력의 운명의 희롱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에인젤과 함께 도망을 치다가 그녀를 잡으려고 추적해온 사람들에게 붙잡혀 사랑하는 에인절과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이다. 비극의 주인공인 테스의 이야기에는 19세기의 물질주의와 재래의 기독교적 신념을 거부한 작가 토마스 하디의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담겨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테스와 에인젤이 최후의 작별을 한 곳이 영국 남부 웨스트에 이미스베리 지역의 바람이 세찬 황무지에 세워진, 태고(太古)의 비밀을 안고 5천년동안 말없이 서있는 스톤헨지였다. 이들이 비극을 자초한 이유는 바로 오해였다. 순결지상주의의 기독교적 맹신이 초래한 오해, 그리고 이 오해가 초래한 비극적 운명의 희롱이 문학작품의 플롯으로 애용되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아이러니 이면서도 문학적 구도로 정착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영국 요크 지역의 황량한 들판에서 펼쳐진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처절한 사랑의 복수극, 고금동서의 최고작가로 손꼽히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오해가 잉태한 비극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벽장에 숨어있던 히스클리프가 넬리에게 쏟아놓던 캐서린의 고백을 중간에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더라도 세계 삼대비극이라는 왜곡된 사랑의 복수가 부른 처절한 종말은 예방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오해에 의한 비극은 꼭 이들 세계명작의 플롯으로만 끊나지 않는데 그 비극성이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특히 우리 이민사회의 척박한 커뮤니케이션의 환경 때문에 치러야할 각종 인간관계의 갈등은 태산준령을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테스를 그녀가 당한 운명의 희롱에서 보다 그녀 내면의 의지에서, 그녀가 당한 모욕적인 “과거"에서 보다 그녀의 구조적 “의지"를 찾으려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바로 우리 이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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