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필자가 지휘자로 있는 교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씨다. 그는 강호동이 진행하는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현란한 기교와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단한 연주를 선보인 후 유명인이 되었다. 이후 여수엑스포 오프닝 세리모니에서 ‘지혜 아리랑’이란 곡을 연주했는데, 넓은 야외무대를 뛰어다니던 그녀의 격정적인 연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그리고 크리스천 뮤지션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그녀가 이번 공연에서 예상 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세계의 유수 콩쿠르를 휩쓸던 독일 유학 당시, 불현듯 찾아왔던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의 젊은 날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바이올리니스트로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 진솔하게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은 감기처럼 언제 어디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신비로운 묘약, ‘음악’이 있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음악치료(Music Therapy)’는 생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뇌성마비, 자폐, 청각 장애 그리고 정신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음악치료가 활용되고 있다.
몇 해 전 필자는 특별한 아이를 가르쳤다. 지금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겸 싱어가 된 코디 리라는 학생이다. 이 학생은 극심한 자폐에 시각장애까지 있었고, 음악적 ‘천재병(Prodigious Savant)’인 희귀병까지 겪고 있었다. 이 학생에게 음악은 특별한 것이었다. 평소에는 컨트롤이 잘 안되지만 음악만 들려주면 푹 빠져 마인드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이 학생에게 음악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이었다.
음악 치료에 관심이 있던 나는 그 학생을 맡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나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를 가르치며, 정확히 그와 건반 위에서 씨름을 하며 보낸 시간은 내게도 좋은 경험이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피아노 위 56개의 흰 건반과 36개의 검은 건반을 누비며 행복해 하던 그의 모습이 박지혜씨의 연주를 들으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박씨의 우울증 치료에 가장 좋은 약은 단연코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녀 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마음의 치료약이 된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그 역시 음악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다. 청년 라흐마니노프는 세상에 내 놓은 첫 야심작, 교향곡 1번이 혹평을 받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급기야 인생을 포기하려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음악을 듣고 작곡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해답을 찾았고, 다행히 스스로 우울증을 치료하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통해 새로운 곡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전 세계 음악인들에게 사랑받고 연주되고 있는 대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그 후 그는 우울증이 완치되고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음악 치료사들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우울증 환자 치료에 많이 활용한다.
사람은 누구든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아픈 상처들을 꽁꽁 싸매고 있지 말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치료받는 것은 어떨까? 흐르는 선율에 마음을 위로받는다면 아픔이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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