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몇 분만해도 숨이 차고 죽을 것 같던 동작들이 있었다. 나한테는 복근을 쓰는 운동들이 하나같이 힘들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곧이어 겪게 될 고통이 생각나 겁을 먹곤 했다. 그런데 그런 동작들도 시간이 지나면 할만 해진다. 피트니스 트레이너들은 그 ‘할 만한’ 순간이 오면 곧장 시간을 늘리거나 강도가 센 다른 동작을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누가 옆에서 지키고 있으면 몰라도 혼자 운동을 하면 솔직히 갈등이 여간 큰 게 아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숨 돌릴 틈도 없이 ‘더 쎈’ 걸 시작하라니, 죽을 맛이다.
그런데 몇 달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익숙한 동작만 할 때 체중 감소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할 만한’ 순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없었다. 역시 죽을 만큼 힘들게 운동을 해야 살이 빠지든 근육이 생기든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다.
15년 전, 한국이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원화가 밑바닥을 칠 때, 나는 하필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유학 중이었다.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부딪치고 딱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지만 공부를 중단하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힘겹게 버텼는데 설상가상 실연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고단한 학업, 마음의 상처, 빈 지갑... 벼랑 끝으로 몰아대는 상황에서 나는 그야말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버텼다. 한 끼로 하루를 때우며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 매일 밤 쓰러지듯 하면서, 내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어찌어찌 그 시간들을 보내고 그 해 졸업장을 받아든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해 냈구나!
그리고 그 졸업장 덕에 미국에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학업을 포기하고 편한 길을 택했더라면 지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되고 고된 경험들이 지나고 보니 내가 한 단계 성숙하는데 필요한 피와 살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2년여의 공백을 깨고 참가한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또 한번 완벽한 연기로 우승한 김연아 선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훈련을 하다 보면 늘 한계가 온다. 근육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 속에서 뭔가가 말을 걸어온다. ‘이 정도면 됐어’ ‘다음에 하자’ ‘충분해’ 하는 속삭임이 들린다. 이런 유혹에 문득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 포기하면 안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 물을 끓이는 건 그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서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가. 나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것 같은가.
어느 정도 노력한 거 말고, 할 만큼 한 거 말고, 죽을 만큼, 딱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죽을 만큼!’과연 그런 삶을 살았던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면 그런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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