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부부 사기·횡령 혐의 기소결정 후 왕세자에 양위·왕실제 폐지 여론 비등
스페인의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 공주는 남편 이나키 우르단가린 공작의 사기 및 횡령 사건에 공모한 혐의로 지난 달 기소되었다.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금년 초 스페인의 집권당인 국민당의 전 재무담당관은 불법자금 관련으로 기소 당했고 지난해엔 대법원장이 공금유용 등의 혐의를 받으며 불명예 속에 사퇴했다…이들은 5년 전부터 몰아 닫친 스페인의 재정위기 이후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1,600건의 횡령, 탈세, 사기, 뇌물, 스위스 은행계좌 등 부패스캔들 중 일부다.
그러나 요즘 스페인의 분수대 옆이나, 카페와 바 등에서 화제에 오르고 있는 스캔들은 정치가들의 부정이 아니다. 스페인의 공주를 감옥에 가둘지도 모를, 아니, 스페인 왕실 자체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스캔들이다. 유럽에선 비교적 검소한 왕실로 평가받았던 스페인 왕실이 부패스캔들로 휘청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둘째 딸 크리스티나 공주가 사기, 탈세, 돈세탁 및 횡령에 대한 공모혐의로 기소되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유럽의 왕족 중 누구도 비리에 연루되어 법정에 소환 된 일은 없었다.
스캔들은 공주의 남편인 이나키 우르단가린 공작의 비리의혹에서 시작되었다. 우르단가린 공작은 비즈니스 동업자인 디에고 토레스와 함께 자신들이 설립한 비영리 ‘누스’ 연구소를 통해 지역정부와의 부풀린 계약에 의한 사기, 탈세, 위조 등으로 780만 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어 이미 심문을 받고 있다. 남편의 횡령을 공모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크리스티나 공주는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7번째인 왕위 계승 서열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핸드볼 선수 출신인 우르단가린은 1997년 크리스티나 공주와 화제 속에 결혼한 뒤 공작 지위를 얻었으나 2011년 말 불거진 이 부패 의혹으로 1년 전 법원에 출석하면서 왕실에 먹칠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왕실은 우리가 새로운 정치체제를 설립할 수 있는 것보다 아마도 더 급속하게 붕괴될 것”이라고 왕실반대 40개 지역정부 및 2,000명 공직자 연합인 ‘제3공화국을 위한 스페인 타운스 네트워크’의 지도자 안토니오 루비오는 예상한다.
케이스를 담당한 호세 카스트로 판사는 “크리스티나 공주가 남편의 불법 거래를 동의했다”고 말한 것으로 법정기록에 나와 있다. 부패 전담 특별검사는 기소 중지를 청한바 있고 5월7일 항소법원도 이 케이스의 기각 명령을 내렸으나 카스트로 판사는 재기소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다음단계가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호기심도 높지만 이번 ‘누스’ 부패스캔들은 스페인 국민들이 경기침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터진 것이어서 전국적으로 거센 분노를 사고 있다. 현재 스페인의 상당수 국민들은 27%라는 높은 실업률(청년 실업률은 50%에 가깝다)과 사회복지의 대폭 삭감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왕실 부패스캔들로 스페인은 1978년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고 민주주의가 복원된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왕실 스캔들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75세 국왕은 아프리카에서 호화판 코끼리 사냥을 했던 것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원래 비밀리에 떠났던 사냥여행이었는데 국왕이 넘어져 엉덩이에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국왕은 재위 38년 만에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이후 왕실에 대한 스페인 국민의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때 존경받던 왕실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41%에 달했다.
“스페인 왕실의 부패와 실책이 순수한 공화국 설립을 지지하는 새로운 추동력이 되고 있다. 왕실의 인기폭락 속도에 나 자신도 놀랄 지경이다”라고 타운스 네트워크의 루비오는 주장한다.
스페인 왕실이 복원된 것은 1975년 독재자 프랑코에 의해서였지만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지난 30년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1981년 일부 군부의 쿠데타 당시에도 국왕은 군부가 아닌 민주 정부에 편에 섰었다.
일부에선 왕실을 구하려면 후안 카를로스가 왕세자 펠리페에게 양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난 현 상황이나 국왕의 건강이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후안 카를로스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자라고자 대학의 현대역사학과 훌리안 카사노바 교수는 “그러나 스페인 국민들이 펠리페 왕세자를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고 우려를 덧붙였다.
“지금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아들에게 양위하는 것은 새로운 왕의 입지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국왕 자신이 현 사태를 잘 해결한 후에 양위를 해야 한다. 현재 왕실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사람은 국왕 자신이다”라고 왕실관련 작가인 호세 아페자레나는 지적한다.
스페인의 2대 정당인 집권 국민당과 제1야당인 중도좌파 사회당은 현 국왕체제의 유지를 원하지만 수세기 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왕족에 대한 비판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4월 중순엔 마드리드에서 새 공화국 창설을 지지하는 수만명의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왕실존속과 공화국 설립의 양자택일을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지만 입헌군주제도 폐지 시 의회해산 등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그래도 펠리페 왕세자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보다 훨씬 높고 주류 정계에선 왕실이 단결의 상징으로서 국가의 존속을 의미하며 제반 정치 제도들 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제도라는 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왕실의 이번 위기가 결국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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