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성씨(姓氏)는 270여개로 집계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성씨는 김해(金海) 김(金)씨로 그 인구는 400만 가까이 된다. 그 다음은 밀양(密陽) 박(朴)씨, 세 번째는 전주(全州) 이(李)씨, 네 번째가 경주(慶州) 김씨이고, 다섯 번째는 경주(慶州) 이씨로 밝혀졌다.
본관이 가리키듯 현존하는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이 신라 아니면 가야에 원류를 두고 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고구려나, 백제에 원류를 두고 있다는 성씨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백제를 대표하던 성씨의 후예는 그나마 일본에서 어느 정도 찾아진다. 미스터리는 고구려의 대성(大姓)의 흔적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엉뚱하게도 그 흔적은 월남에서 찾아진다. 니엔(NGUYEN·淵)씨와 호아((HOA·乙阿)씨가 그 경우로 이들은 천년도 훨씬 전 조상들이 나라가 패망하면서 북만주지역에서 쫓겨나 박해 속에 중국에서 살다가 내려와 월남에 정착하게 됐다는 집안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 씨족의 전통의상의 하나가 색동저고리라고 한다. 거기다가 ‘조의(衣)’수련을 가전(家傳)의 심신 수련방법으로 전수해왔다는 것이다.
조의는 신라의 화랑과 유사한 고구려의 무력집단으로 명재상 명립답부(明臨答夫),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이 조의 출신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고증은 어렵지만. ‘연(淵)씨, 을(乙)씨 등 고구려의 유력씨족이 조국의 패망과 함께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박해 속에서도 결코 고구려의 전통을 잊지 않는다. 그러던 그들이 계속 남하해 월남의 한 씨족이 됐다’는.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서 1백km 정도 떨어진 고산지대에 라후(Lahu)족이라는 고산족이 살고 있다. 역시 고증되지는 않았지만 이 라후족은 7세기 고구려 멸망 때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들의 후예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어순(語順)이 우리말의 어순과 같다. 또 1인칭을 ‘나’, 2인칭을 ‘너’라고 부르고 김치와 된장을 담가먹고, 찰진 밥을 해먹는다.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 중 한 무리가 탈출해 남으로 피신해 태국 북부지역 고산지대에 정착한 것이 이 라후족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 아니다. 라오스에서 추방된 탈북 청소년 9명이 평양으로 강제 호송돼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와서다.
그들의 탈출경로가 그렇다. 천년도 훨씬 전 패망한 고구려인의 고난의 유랑 길을 연상시킨다. 특히 애처로운 것은 그들의 모습이다. 너무나 왜소해 다른 인종 같다.
북한 청소년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11세 남자어린이의 경우 남한 어린이에 비해 키는19cm가 작고, 몸무게는 16kg이나 덜 나간다. 영양부족이 이런 차이를 불러온 것으로, 장기화되면 인종이 바뀐다고 느낄 만큼 심각한 편차가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수령유일체제의 김씨 왕조는 수 천 년 보존되어온 한민족의 원형까지 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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