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선생님은 하늘처럼 높아 보였다. 내가 처음 다닌 초등학교는 집에서 십리나 떨어져 있었다. 여덟 살 개구쟁이에게는 뛰고 걷고 노는 즐거운 먼 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은 유난히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다. 깨끗한 와이셔츠에 가죽 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선생님은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학교 가는 길에는 찔레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하얀색 찔레 꽃향기는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부드럽고 긴 새순은 달짝지근한 먹거리가 되었다.
봄이면 냇가를 따라 핀 꽃과 함께 버들강아지는 어린 초등학생들에게는 장난감과 같았다. 버들강아지를 조심조심 비틀어 껍질을 벗기면 피리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었다. 냇가의 시냇물 소리와 물속의 송사리 모습이 어린 내 가슴속에 자라 아직도 고향의 냄새로 남아 있다.
공자는 나이가 60이면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이순이란 철없는 아이가 60년을 살고 나니 지혜롭게 행동하고 순리에 맞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 했다. 철들어 세상의 이치를 알 만하니 일터에서 물러나 갈 곳이 없어 산으로 강으로 자연을 벗 삼은 나이 또한 60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평일에도 붐비는 등산객을 보고 한국인은 산에 매료된 민족이라고 한다. 바위에 걸터앉아 천년의 소리를 듣고 나무 사이 바람결에 자연의 이치를 피부로 느끼는 이순은 갈 길이 너무 멀다.
언젠가부터 철밥통이란 말이 사용됐다. 큰일 없이 조용히 직장생활을 잘하면 정년까지 계속 다닐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된 안정된 직장을 철밥통이라고 한다.
가장이 직장에서 목이 날아가면 가족의 생계에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다. 가장의 권위는 식구들이 배불리 먹고 등 따스하게 잘 수 있는 의식주의 해결이 기본이다. 육신의 밥통을 채울 수 있는 철밥통은 자연의 순리일 따름이다.
미국 군대에서는 38세에 은퇴할 수 있다. 18세가 되면 자원입대할 수 있고 20년이 지나 은퇴하면 퇴임 당시의 50%에 해당하는 연금과 수많은 복지혜택을 죽을 때가지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은퇴자들은 새로운 인생을 38세에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20여년 일해서 62세가 되면 조기은퇴해서 평생 연금도 받을 수 있으며 국가로부터 의료혜택과 사회보장금 수혜자가 된다. 농담으로 이들을 별정직 연방 공무원이라고 부른다. 공무원 신청서를 내려고 시간을 기다리는 베이비부머들이 너무나 많다.
현대에는 유리밥통도 있다. 대표적인 철밥통이 공무원과 학교 선생님이라면 전문직은 깨지기 쉬운 유리밥통이다. 현대사회 평균 연령은 국가나 남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80세가 넘는다고 한다. 죽자 살자 일해서 망할 때 망하더라도 정력적으로 일하는 전문직은 아슬아슬 위험한 자유업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70이 넘도록 일하고 틈틈이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자유업도 좋은 유리밥통이다.
‘풀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풀꽃에서 선남선녀의 삶을 길가의 들풀에서 보았는지 모르겠다. 어린 눈에 보이는 갯가의 하얀 찔레꽃도 사랑스럽고 그 향기에 취해 십리길 학교도 날듯이 다녔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들풀처럼 어디에 어떻게 지냈던 자신의 분수껏 지나온 세월이 풀꽃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여유로운 주름 속에 미소가 아름답다. 청춘은 주름 속에 숨었으나 깊은 눈 속이 호수처럼 조용하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별정직 연방 공무원. 그들의 삶에 조용히 귀 기울이면 그들도 자랑스럽다. 미움도 욕심도 비운 그들의 조그마한 철밥통이 귀하게 보인다.
강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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