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마을의 양대 가문인 늑대와 돼지 집안은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늑대는 툭 하면 돼지를 물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63년 전 어느 날 늑대는 집안 온 식솔들을 동원해 돼지 집안으로 쳐 내려왔다. 돼지는 친구 독수리의 도움으로 간신히 늑대들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와중에 돼지 집안이나 늑대 집안 할 것 없이 토끼 마을은 초토화가 됐다.
그러나 늑대는 그렇게 혼이 나고도 그 후에도 기습용 땅굴을 파는가 하면 한 겨울에 늑대 암살단을 파견해 돼지 지도자를 죽이려 했고 끝내는 돼지 지도자의 아내를 총격 살해했다. 돼지와 늑대 집안 경계선을 지키던 돼지의 친구 독수리가 늑대의 도끼에 맞아 비명횡사했고 이웃 마을을 방문 중인 돼지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터뜨려 지도자와 같이 있던 수많은 애꿎은 돼지가 죽었다. 그것도 모자라 돼지 노동자가 탄 비행기를 폭발시켜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하는가 하면 공항 폭탄 테러, 탈 늑대 집안 늑대 암살 등 만행을 그치지 않았다.
이런 끝없는 해코지에 지친 한 돼지 지도자가 “먹을 것은 얼마든지 줄테니 제발 물지만 말아 달라”며 늑대 집안을 방문, 늑대 지도자와 악수까지 한 후 헤어졌으나 그 후에도 늑대의 도발은 그치지 않았다. 두 지도자가 만나 토끼 마을 평화 선언을 한 지 불과 2년 뒤 돼지들이 축구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늑대들은 돼지가 타고 있는 배에 발포해 여러 돼지가 죽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늑대 집안이 돈을 벌 수 있도록 차려준 늑대 집안 내 관광 특구를 방문한 돼지를 총을 쏴 죽여 버렸다. 돼지 쪽에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늑대 관광 특구 방문을 금지하고 원조를 중단하자 격노한 늑대들은 한 밤 중에 몰래 돼지가 타고 있던 배에 구멍을 내 수 백을 수장시켜 버렸다.
그쯤 했으면 알아서 길 줄 알았던 돼지가 의외로 뻣뻣하게 나오자 이번에는 관광특구와 함께 늑대 집안 내 양대 돈줄이던 수공예품 공장을 닫아버리고 60년 동안 지속돼온 정전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시켜 버렸다. 이 공장은 “앞으로는 남을 물지 말고 우리처럼 물건을 만들어 팔아 먹고 살라”며 돼지들이 지어준 것이다. 돼지가 투자한 돈이 큰 액수이기 때문에 이를 닫으면 돈을 들고 와 다시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복걸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돼지는 즉시 문을 열지 않으면 영구 폐쇄하겠다고 나왔다.
당황한 것은 늑대 쪽이다. 여기서 나오는 돈으로 수많은 늑대들이 먹고 살았고 무엇보다 늑대 간부들과 ‘지존’으로 불리는 늑대 지도자의 비자금 구실을 톡톡히 했는데 금강산에 이어 이 돈줄까지 막히자 다급하게 된 것이다. 황급히 전통의 우방 팬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으나 팬다의 태도는 어찌된 영문인지 냉랭하기만 했다.
경제 발전과 국내외 안정이 무엇보다 시급한 팬다로서는 끊임없는 원조를 요구하며 핵 개발이란 불장난으로 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늑대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늑대가 핵을 만들자 과거 팬다를 몹시 괴롭힌 적이 있는 이웃 섬나라의 사나운 원숭이들이 군비 확장과 핵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골칫거리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늑대들은 결국 백기를 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수공예품 공장을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늘 당하기만 하던 돼지로서는 오랜만의 승리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의 조상은 원래 늑대였다. 사납기 짝이 없던 늑대를 밥을 주며 길들여 충직하기 짝이 없는 개로 만든 것이다. 모든 동물은 결국 길들이기 나름이다. 그리고 길들이기의 가장 큰 원칙은 밥 주는 손을 무는 동물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 것이다.
늑대가 먹을 것을 달라며 아무나 무는 나쁜 버릇을 버리기 전까지 토끼 마을의 평화는 불가능하다. 돼지 집안의 모든 대 늑대 정책은 그 버릇을 버리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번 수공예품 공단 폐쇄와 재가동은 이를 향한 첫 걸음이자 좋은 선례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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