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 떫은 열매를 매다는 그 나무에
곱은 꽃잎만 피우는 그 나무에
어쩌자고
실밥 같은 벌레가 오글대는 것일까
삭은 날개를 기운 나방이 날아드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
허름한 국밥집에 모여드는 늙수그레한 사내들처럼
변두리 점방에서 화투짝을 돌리던 레지들처럼
마른 젖꼭지에 악착같이 들러붙는 어린 가난처럼
당연한 일
양푼 가득 비빈 열무 밥에
푹 푹 꽂혀 있던 숟가락들처럼
수돗가에 모여들던 찌그러진 양은다라처럼
솥뚜껑에 붙여 둔 발꿈치를 덧댄 양말처럼
뜨겁게 부대끼는 것
그러니까 당연한 일
임현정(1977-) ‘모과나무 점방’ 전문
21세기의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그늘은 깊다. 그늘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참 많다. 허름한 국밥집, 점방의 화투짝과 떨어진 양말이 있는 풍경은 현대라는 덧문을 하나만 열어젖히면 여기 저기 보인다. 함께 모여 서로 비비며 살아가는 여자, 아기, 사내, 그리고 가난. 모과열매처럼 쉬이 제 몸을 벌레에게 내어주는 무수한 변방의 삶들. 그늘은 슬프고도 따스하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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