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
남자의 말에 나는 삐약 삐약 웃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였다.
그 햇병아리를 녀석이 걷어찼다. 그때 걷어차인 자리가 아파 가끔 잠을 설친다. 자다 깨어 날계란으로 멍든 자리를 문지른다. 분명 녀석의 발길질에 내 껍질이 깨졌다. 그러니까 나는 프라이가 된 셈이다. 팬에 놓은 것처럼 심장이 뜨거웠고 소금 뿌린 자리가 쓰라렸다.
그와 헤어진 후 또 한 개의 흉터를 얻었다. 자라목에 두꺼운 안경을 낀 말대가리 녀석, 맞선에서 몇 번이나 차였는지 상처투성이였다. 그래 어디를 걷어 차줄까, 잠깐 방심하는 사이, 눈치 빠른 녀석이 먼저 박차고 일어섰다. 얼떨결에 나는 쩍 금이 갔다.
헛발질에도 쉽게 깨지던, 계란으로 바위 치던 시절, 사랑은 내게 넘치거나 못 미쳤다. 번번이 달궈진 팬에 왈칵 쏟아졌다. 나는 한 번도 껍질을 깨지 못했다.
마경덕( 1954-) ‘계란 후라이’ 전문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알까기에 비유한 재미있는 시이다. 사랑하다 헤어지는 것은 분명 알을 까고 나오는 일의 하나이다. 이 시에 의하면 성숙한 이별이라면 병아리가 되어 새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란 후라이라는 것이다. 내가 치던 상대가 치던 서로를 함부로 쳐서 깨는 것은 사랑도 이별도 아닌 다만 후라이를 만드는 일이라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계란이 병아리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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