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이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돼 불문에 들어간 후 도를 닦아 당대 최고의 승려가 됐다. 명상과 설법으로 삶을 마감할 것 같았던 그의 인생에 중대한 변화가 온다. 그가 72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터진 것이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승병을 모아 왜적을 무찌르는데 앞장서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제자 하나가 물었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가장 큰 죄로 여겨 금하고 있는데 승려의 몸으로 칼을 들고 왜적을 죽이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서산대사는 답한다. “내가 든 칼은 무고한 백성을 도륙하는 왜적의 목을 쳐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다. 내가 왜적을 죽인 죄로 지옥에 떨어진다면 백번이라도 떨어지겠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선일 수 있다.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목을 조르는 살인마의 목을 베는 것이 한 예다. 왜적을 가장 많이 죽인 이순신이 한민족 최대 영웅인 것도 같은 이치다.
세계 각국의 법체계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게 있다.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이는 정당방위는 범죄가 아니란 점이다. 집단 살인 행위인 전쟁도 마찬가지다. 침략 전쟁은 범죄지만 침략한 적을 죽이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서양에서 ‘정의로운 전쟁’을 처음 이론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기독교 최대 신학자로 꼽히는 오거스틴이다. 그는 무력이 아니고서는 막을 수 없는 악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밝혔다. 오거스틴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기독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합법적인 정부에 의해, 이익이 아니라 의로운 목적으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적의 침입으로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전쟁의 정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웃 나라에서 집단 살육이 일어나고 있는 경우 이를 막기 위해 개입해야 하느냐는 좀 더 어려운 문제다. 1994년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분쟁으로 50만에서 100만이 사망했는데도 국제 사회는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반면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 청소로 10만 명이 사망하고 5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하자 국제 사회는 나토의 공습으로 이를 중단시키고 평화를 가져왔다.
지금 시리아에서는 2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이미 10만 명이 사망했고 최근에는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어린이 400명을 포함, 1,40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와중에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주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유엔 관리 하에 두는데 합의했다고 한다.
이것이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무력을 쓰지 않고 화학무기를 제거할 수 있겠지만 성공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평화 시에도 무기 소재를 파악해 폐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 정부가 제대로 협조할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시리아 반군은 즉각 이는 시간을 벌기 위한 시리아 정부의 꼼수라고 반발했다.
이로써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물러나야한다던 오바마의 지금까지 주장은 공수표가 됐다. 이제부터 아사드는 퇴진 대상이 아니라 협상 대상이다. 오바마로서는 속이 쓰리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민 대다수가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보복으로 무력을 사용하는데 반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의회에서 무력 사용을 승인해줄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무력을 사용해도 그 규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을 것‘이라고 말하면 개입 우려를 불식시키려했지만 오히려 이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하나마나한 무력 사용을 뭐 하러 하느냐는 반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로 미국의 무력 사용은 사실상 물 건너갔으며 아사드는 목숨을 보장받게 됐다. 그는 이제 서방이 반군을 지원하면 합의를 깨겠다고 나올 것이 뻔하다. 시리아 국민들의 고통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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