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가 새로 공개됐다. 다산 선생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군이 제작한 이 초상화는 이례적으로 안경을 쓴 모습이어서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치밀한 고증 끝에 이 초상화를 그린 한국 전통문화학교 김호석 교수는 다산 선생은 엄청난 독서량과 저술로 인해 시력이 약해졌을 테고, 따라서 안경을 착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다산 선생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목민심서’ ‘경제유표’ 등 500여권의 책을 지었고, 후세에 큰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귀양지의 옹색한 환경과 변변치 않은 조명 아래서 밤낮 없이 그 많은 책을 쓰고, 엄청난 책을 읽었을 터이니 눈이 나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초상화의 안경을 쓴 다산 선생의 모습은 대학자답게 매우 지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안경 덕이 다소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안경은 16세기 임진왜란 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다산 선생의 재능을 지극히 아꼈던 정조 임금도 안경을 썼다고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정조 임금은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써야만 했는데, 안경을 쓰고 조정에 나가면 신하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소심남(小心男)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종 임금은 근시로 시달리는 아들 순종이 안경을 쓰면 혼쭐을 냈고, 한 신하는 왕 앞에 안경을 쓴 자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시력을 교정해 주는 기능보다는 안경에 관한 ‘예법’을 더 중시해야 했던 조선시대 안경잡이들의 안타까운 스토리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안경잡이들이 멋과 디자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89년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기록에 의하면 “눈에 굉장히 큰 원형의 흑색 수정구 2개를 걸고 다니는데, 멋을 내느라 끼고 다니는 것 같다”고 적혀 있는 걸 보면…아무튼 그 당시에는 안경이 매우 신기하고 귀한 물건이어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예법을 지켜야 했으니 안경잡이들의 고충을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안경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어떤 안경이 가장 바람직한 안경일까?실용성과 아름다움의 조화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즘 내가 새삼스럽게 곰곰이 생각하는 물음들이다. 좋은 안경은 근본을 잃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안경과 함께 외길 인생을 살아온 내가 꿈꾸는 것은 사실 ‘안경이 필요 없는 세상’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이다. 하지만 나의 희망은 아마도 꿈으로 끝날 것 같다. 우리의 생활환경은 날이 갈수록 눈을 혹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고, 사람들은 자기의 소중한 눈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 따라서 안경을 쓰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화 시대의 홍수 속에 매일 컴퓨터, 휴대전화, 스마트폰 등에 하루 종일 코를 박고 살아가니 시력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눈이 보배’라는 말도 있고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도 있다. 몸이 100냥이면 눈은 90냥이다그만큼 눈이 중요하다. 시력은 한 번 나빠지면 다시 회복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러므로 평소 철저한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눈 건강을 위한 캠페인이라도 펼치고 싶다.
우리 모두 눈을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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