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장거리 여행을 하는 방법에는 하늘, 바다 또는 육로(陸路) 이용이 있다. 우리 부부의 오랜 친구인 토니와 낸시 부부는 플로리다에서 워싱턴까지 그 먼 길을 직접 운전하고 올라온다.
토니가 운전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강의하던 교수가 은퇴하고 택한 곳이 미국의 최남단인 키 웨스트(Key West)였으나 지금은 플로리다 레이크 조지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작은 아들 마크가 DC에 짱짱한 고정 직업이 있고 바비큐 파티가 가능한 집이 있어서 해마다 올라와서 약 1-2주 도시생활을 즐기다 내려간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친해지는 이유는 서로 대화가 통하고 취미가 비슷하고 먹는 음식의 범위까지 같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오랜 세월 사귀면서 친교의 색이 퇴색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상호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의 만남은 시작부터 유머가 넘쳤다. 오래 전 실버스프링 콜스빌 로드에 있던 한식당 한일관 지하에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남편은 그 당시 파이프 담배를 피울 때였는데 그 날 따라 라이터를 잊고 가서 파이프 입에 물고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한참 후 등 뒤에서 갑자기 덥수룩한 긴 팔이 쑥 뻗어 나오면서 손끝에 라이터가 들려 있었는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짓던 남자가 토니이다.
그것이 우리들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 주말 버지니아에 있는 한식당 비원에서 우연히 또 만났다. 알게 된 지 2주 만에 토니와 낸시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 집 딸 리사가 만들어주는 피칸 파이는 정말 별미였다. 그 답례로 우리도 베데스다 집으로 초대했으며 그렇게 우리들은 주말시간을 함께 하며 그들이 은퇴하고 남쪽으로 내려간 후에도 만남을 지속했다.
집안의 대소사도 함께 했고 해가 거듭될수록 우의는 돈독해지고 우정의 강은 깊어만 갔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정의 빛깔은 퇴색할 줄 모르고 서로가 따뜻한 빛을 보내고 있다.
그런 우리들의 벗 토니와 낸시가 와서 한가위 날을 함께 하고 있다. 토니와 낸시가 있었기에 플로리다 키웨스트까지 내려가서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고, 사방 벽에 빈틈 없이 골동품으로 장식된 레이크 조지의 집에서 잠도 잤다. 술 한 잔 들고 호수변의 야경(夜景)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들 넷이 모이면 화제도 항상 사방팔방으로 튀고, 토론으로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에스프리, 위트, 유머로 풀어버리고 박장대소로 끝난다. 즐거운 결말을 연출하는 그 화법이 너무 좋다.
그 토니와 낸시가 이번 한가위를 워싱턴에서 함께 했다. 운전거리가 짧아진 내 남편을 위해 토니가 운전대를 잡고 여자들의 명령만 떨어지면 어느 곳이던 천마(天馬)같이 날아갈 기세이다. 우리는 DC 가까운 워싱턴 애비뉴에 있는 일식집 무라사키로 가서 넉넉히 시간을 잡고 점심을 했다.
그리고 그 곳서 멀지 않은 마크 집으로 이동, 그린티와 후식, 담소를 즐기다 H마트에 들러 토니와 낸시가 가지고 갈 것 몇 가지를 샀다.
나는 한가위 송편을 집었다. 내년 3월 우리 부부는 레이크 조지를 방문하기로 약속 했다.
한가위, 이솝 우화 같은 달 속에서 토끼가 떡방아 찧는 귀여운 모습을 연상하며 오순도순 들러 앉아 송편 빚던 아름다운 풍속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토니와 낸시 부부가 와서 우리 부부의 마음은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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