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또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루턱에 서서 주위를 찬찬이 둘러본다.
나는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다’(日新又日新)라는 말을 믿고 하루하루를 새로운 오늘로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 왔기 때문에, 새해를 맞는 느낌이 별로 새삼스럽지는 않다. ‘대학’에 나오는 이 말은 원래는 ‘일신 일일신우일신’(日新 日日新又日新)으로, 풀이하면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 안병욱 교수님의 “인생은 오늘의 연속이다. 오늘을 사랑하여라. 오늘을 감사하여라. 오늘을 열심히 살아라. 오늘을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 생각하자”는 말씀에도 깊이 공감하며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느낌이 남들처럼 호들갑스럽지는 않지만, 새로운 해에는 세상이 좀 더 밝고 평화롭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날마다 조금씩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는 것 아닐까…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나빠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전쟁, 잔인한 폭력, 야비한 속임수, 창피를 모르는 뻔뻔스러움, 나밖에 모르는 탐욕, 돈을 신으로 숭배하는 물신주의, 욕설로 범벅된 말투, 끝없이 이어지는 다툼, 무작정 새 것만 찾는 경박스러움… 왜 이렇게 거칠고 험악해지고 있는 것인지, 과연 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더럭 겁이 날 때도 많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세계 모두가 그렇고, 물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새해에는 달라졌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고쳐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빨리빨리 문화, 냄비 근성, 자기 분수를 모르는 독선과 오만… 같은 고약한(?) 마음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내가 보기에는, ‘4대강 살리기’ 사업 같은 일이 좋은 예로 여겨진다. 유장하게 굽이굽이 흐르며 스스로 맑아지는 생명의 강을 직선으로 바꿔버리고, 그것도 자기 임기 안에 끝내야 한다며 빨리빨리 서두르다보니 결국은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자연의 순리를 인간 마음대로 바꾸겠다는 오만한 독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자기 분수를 모르는 독선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빨리빨리 문화’ 덕에 우리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말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서 쓸 수는 없다”는 옛 어른들이 가르침만 기억하고, 조금만 겸손하면 피할 수 있는 재앙이 되풀이해서 일어나고 있으니…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지도자의 독선과 오만은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를 망친다. 그렇다고 지도자만 탓할 수는 없다. 그런 지도자를 뽑은 것은 국민이니, 결국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셈이다. 지도자를 잘 뽑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기본을 하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우리 미주 한인사회의 현실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슨 수를 쓰든 빨리 돈만 많이 벌면 되고, 그것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혹시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면 그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는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없을 것이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걸어가야 한다. 그 첫 걸음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겸손하게 하루하루에 충실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인생은 오늘의 연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이요, 지금이다. 영어에서 ‘지금’이라는 단어 present는 ‘선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가 가장 큰 선물이라는 뜻이다.
부디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아름답고 넉넉한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김 종 영 <이태리 광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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