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커스 노인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89세 임덕남 할머니. 얼마 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아들을 비롯 주위 사람들이 모두들 그 나이에 뭐 하러 어렵게 시민권을 따려느냐고 했지만, 임덕남 할머니는 ‘나도 당당하게 투표를 하고 싶었다.’며 89세 나이에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 한다.
현재 용커스 캐시미어 시니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임덕남 씨는 미국과 한국에 총 6남 3녀의 자녀와 수십 명의 손자 손녀와 증손자 손녀를 둔, 다복하고 당당한 미국 시민이 되었다.
지난 주, 화이트 플레인즈 시청에서 시민권자 선서를 한 그는 1992년, 70이 넘은 나이에, 잠시 어린 손자를 봐줄 겸 방문 왔다가, 미국 생활이 좋아서 주저앉았다. 그 때 이후 줄곧 웨체스터에 거주하면서,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으로 조기 유학 온 또 다른 손자를 봐주며 ‘기러기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 손에 자란 그 손자는 명문 학교를 나와 지금은 소더비 인스티튜트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특별히 정이 더 든 그 손자에게 아직도 장조림과 양념한 갈비서부터 콩장이며 온갖 나물과 전, 잡채, 육개장, 된장찌개, 식혜까지 수십 가지의 한국식 반찬을 만들어 두 달에 한 번씩 손자가 살고 있는 뉴욕 시내로 실어 나른다.
물론. 활동가인 임덕남 씨의 발 노릇을 해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김근우 씨는 오래 전서부터 임 씨가 지도하고 있는 서예 클래스며 샤핑 등 어디든 차편을 제공해 주며, 임덕남 씨를 마치 누님처럼 따르는 사이이다.
교회 생활에서뿐 아니라 언제나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타인에게 덕을 나눠주는 삶을 살아 온 그를 90이 다 된 노인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그가 특히 이곳 한인 커뮤니티에 공헌한 것으로 2010년부터 노인들의 여가 생활을 위해 마련한 무료 ‘서예 교실’이다. 60세부터 시작한 서예로, 한국의 유수한 서예 공모전에 수차례 수상을 했으며, 2008년도에는 그가 다니고 있는 ‘동산교회’에서 전시를 열고 판매금 전부를 선교비로 보내기도 했다.
2009년도에 예지원에서 주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임덕남 씨는 뉴욕 한인 직능단체 의장 및 뉴욕 한인건설협회 회장인 김영진 씨의 어머니이다. 요즈음, 매주 동산교회에서 일요일은 교인들에게, 월요일은 외부인들에게 그리고 수요일에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 동안 임씨를 거쳐 간 제자들이 50여 명이다.
그의 건강비결은 모든 사람들과 어울리며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하면서 밝고 명랑한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건강 비결을 물어올 때 마다, ‘난 아무 것이나 다 잘 먹는다. 그저 마음을 곱게 쓰면 된다’고 대답한다. 워낙 소식가인 그는 가끔 ‘코리아 가든’에 가서 불고기를 먹지만 고기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민권 선서를 마치고 나와 ‘안하셔도 된다’던 아들들에게 전화를 하니, 밝은 목소리로 ‘어머니 축하합니다.’했다면서 이제는 정말로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힌다.
18세 때의 빛바랜 결혼사진서부터 아파트 벽과 커피 테이블 등에 빽빽하게 붙어있는 수백 개의 사진들. 임덕남 할머니가 열정적으로 살아 온 자취들이 모자이크 작품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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