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종 영 <이태리 광학 회장>
▶ 삶과 생각
어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안경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분이 있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 그 돋보기안경을 눈에 대보면 세상이 크고 따스하게 보이고, 어머니가 평소에 꾸시던 꿈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하며 조용히 웃는다. 약간 물기 어린 그 이의 눈이 참 아름답다.
꿈을 보여주는 안경… 평생 안경을 만들며 살아온 내게는 감동적인 말이다.
얼마 전, 아는 분으로부터 뜻 깊은 선물을 받았다. 여러 시인들이 안경을 소재로 쓴 시들을 모아 복사한 것이었는데, 안경을 소재로 쓴 시가 이렇게 많다니 놀랐다. 하긴 안경은 제2의 눈이고, 세상 사람의 절반이 안경을 쓰고 있으니 시의 소재가 될 법도 한 일이겠다.
고마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보니 정말 느낌들이 진했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 박남수 시인의 ‘안경’이라는 시에 큰 감동을 받았다. 몇 구절을 옮겨본다.
안경을 쓰고 살아왔다./ 예전에는 멀리가 보이지 않아서, 오늘에는/ 가까이가 보이지 않아서, 한평생을/ 나는 안경을 통하여 세상을 보면서 살아왔다.
구부러진 유리알을 통하여/ 세상의 애환을 살아왔지만, 세상이/ 그렇게 슬프고 기뻤는지 알 수가 없다. <중략>안경을 쓰고 살아왔다./ 예전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오늘에는/ 현실이 보이지 않아서, 한평생을/ 나는 안경을 벗지 못하고 살아왔나보다. <중략>안경이 너무 밝아서, 어쩌면/ 세상의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고, 나는/ 어느 한 면만 쉽게 즐겼는지도 모른다.
안경이 너무 어두워서, 어쩌면/ 세상의 눈부신 것을 보지 못하고, 나는/ 어느 한 가지만 자꾸 슬퍼했는지도 모른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나는/ 유리의 척도에 맞춰 세상을 보면서/ 그것만 세상인 줄 알면서 살아왔나보다.
그 잣대가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도/ 아무리 정의로운 것이라도, 그것은/ 구부러진 유리알, 그것이/ 아무리 어설픈 눈이라 해도, 내 눈으로/ 내 세상을 보면서, 내 발로/ 스스로 걸어가서 확인하면서, 나머지/ 세상은 슬기롭게 살 일이다.
김용언 시인의 시 ‘나는 안경을 쓰고 잠자리에 든다’도 감동적이다. 꿈을 좀 더 선명하게 보고, 나의 중심을 보고 싶어서 안경을 쓰고 잔다는 표현이 참 신선하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맑은 물에 헹궈낸 빨래처럼 흔적도 없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여, 그래서 안경을 쓰고 잠자리에 든다. <중략>오늘도 안경을 쓰고 잠자리에 든다./ 보고 싶은 나의 꿈, 더러는 잠들어 있는 나의 중심.
시인들은 꿈을 선명하게 보고 싶어서 안경을 쓰고 잔다고 노래하지만, 실제로 더 시급한 것은 현실을 바르고 똑똑하게 보는 시력을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지금처럼 첨단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다 보면, 정말 꿈을 보여주는 안경이 머지않아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렌즈를 만드는 첨단 광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먼 우주도 볼 수 있고, 아주 작은 세포의 조직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꿈을 보여주는 렌즈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헬렌 켈러의 유명한 명언이다. 보되 맑고 밝고 아름답게 본다면 더 큰 축복이 아닐까? 그렇게 세상을 아름답고 바르고 깨끗하게 보여주는, 정말 좋은 안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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