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에 내려가면 되도록 라호야로 차머리를 돌리곤 한다. 그곳에 내려 해변을 걷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태평양을 넋 놓고 한 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영혼이 깨끗하여 지고 마음이 ‘힐링’되어 바다 위를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 정말 만점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 높다랗게 서 있는 ‘솔리대드 십자가’를 철거하라는 소송이 25년째 진행 중이라는 보도를 읽었다. 무신론 단체가 헌법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문제 삼은 것이 발단이었다. 그 이후 시유지 매각, 주민투표 등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1954년 재향군인들이 전몰용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이 43피트 높이의 십자가는 실상 미국 역사의 중요한 기념물이다. 특히 우리 코리안들로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상당수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기에 결코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이처럼 십자가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모하비 사막 ‘선 라이즈 락’이라는 바위에 세워진 1차 대전 전몰장병 추모 십자가도 몇 년 동안 수난을 당했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에 의하여 무참하게 무너진 그 자리에 세워졌던 십자가 그래서 ‘그라운드 제로 크로스’로 이름 붙여진 십자가도 즉각 철거하라는 소송이 있었다.
그건 또 미국에만 있는 일도 아니다. 독일이 통일된 뒤 베를린 장벽 검문소 자리에 1,065개의 십자가를 세웠다. 장벽을 넘다가 희생된 동독 난민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워진 십자가였다. 그러나 공공부지에 세워졌다는 이유로 마침내 사라지고 말았다. 동독 정치범 출신 200 여명이 십자가에 자신들의 몸을 쇠사슬로 묶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헛수고였다.
한편 기독교를 탄압하는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아예 십자가라면 씨를 말린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일부 이슬람권에서는 더 잔혹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안다. “십자가를 사형처분해라, 십자가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런 아우성이 세계 도처에서 들려온다. 심지어 병원과 적십자 단체들의 십자가조차 없애버릴 태세이다.
이런 저항은 십자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몇년전 앨라바마 주대법원의 십계명 돌비가 연방 대법원의 결정으로 철거된 사건이 있었다. 결국 그것도 십자가에 처형된 셈이다. 미국 달러에는 “In God We Trust”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동전과 은전에도 있지만 지폐에는 더욱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미국 국가에는 그것을 ‘우리의 모토’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문구도 십자가에 처형하라며 난리들을 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것도 과연 얼마나 더 버틸까 의문이다.
그렇다고 십자가 보존을 위해 온 교회가 총동원되어 대항할 필요는 없다. 교회 첨탑과 예배실 중앙에 자리 잡은 십자가, 그리고 미국 돈에 있는 그 문구도 떼어버리자는 주장이 기독교 안에서도 줄기차게 있어왔다. 우상숭배일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반면에 설혹 무신론자나 반 기독교인이라 해도 역사적 유물이나 문화재로서라도 솔리대드 십자가 같은 것은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만약 이슬람교가 한국의 정권을 잡자마자 석굴암이나 불국사를 불태워 버린다면 그게 어디 문명인의 행동일까. 그런 야만적 행위가 아프간에서 실제로 있었다.
십자가를 십자가에 처형한다고 해서 기독교가 큰 일 날 것도 없다. 아니, 기독교는 죽어야 살고, 죽여야 부활하게 된다는 역설적 진리 위에 든든히 서 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수많은 열매를 맺지 않던가.
기독교의 흔적을 지우려는 무신론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기독교 신자에게만 영원한 스승 되신 것은 아니다. 가령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온 인류와 장래 세대에게 생명 존중의 혜택을 제공하는 불멸의 진리 아닐까. 원수라면 무조건 죽이라는 잔혹한 폭력이 북한에서처럼 횡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십자가가 바로 원수 사랑의 핵심적 상징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사순절, 수난절, 부활절이 그것을 명명백백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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