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행진’((March of Folly)은 미국의 대표적 역사학자 바바라 터크먼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이 책은 ‘트로이의 목마’부터 ‘월남전’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계속 저질러 왔는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10년 간 싸우던 그리스 인들은 물러가고 해변에는 커다란 목마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것만 불태워 버리면 트로이 인들은 옛날처럼 평화롭고 풍족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그렇게 하면 신들의 분노를 살 것이란 이유로 이를 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카산드라와 라오콘을 비롯한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극구 만류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묵살된다. 결국 트로이 인들이 승리에 기쁨에 취해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진 순간 목마에 숨어 있던 그리스 인들은 10년 동안 열지 못했던 성문을 안에서 열며 이와 함께 트로이는 멸망하고 만다.
루터의 종교 개혁 때도 그랬다. 가톨릭의 타락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은 이에 귀를 닫고 사치와 향락에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 결과 기독교권은 루터가 이끄는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양분됐으며 ‘30년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거친 채 아직까지 갈라진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실리 없는 명분에 집착해 악착같이 식민지 주민들로부터 몇 푼 안 되는 세금을 거두려다 아예 식민지를 잃어버린 영국 왕 조지 3세, 프랑스가 이미 손들고 나가 버린 인도차이나에 뒤늦게 뛰어들어 명분 없는 전쟁을 하며 수많은 월남인들과 자국 병사를 희생시킨 미국 지도자들을 어리석음의 표본으로 들고 있다.
터크먼이 속편을 쓴다면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 지도자들이 보여준 행태도 아마 포함될 것 같다. 1991년 2월 미국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을 몰아내고 이라크로 진격하자 많은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의 몰락은 시간문제로 내다봤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미국이 마음만 먹었으면 사담 축출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는 바그다드 입성을 포기했고 사담은 살아남았다. 독재자를 제거하고 이라크를 우방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도 부시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당시 부시의 안보 담당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우크래프트는 훗날 “우리가 그 때 바그다드로 쳐들어갔더라면 아직도 우리는 적대 세력으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점령군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아들 부시가 이라크 침공을 계획하자 부시 가문과의 오랜 친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비판했다. 2011년 오바마가 이라크 조기 철군을 발표하자 그는 “이라크가 스스로 치안을 지킬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것은 미 국익의 전략적 패배일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정확히 중동 사태를 예언할 수는 없다.
2011년 오바마는 두 가지 중요한 실수를 범했다. 하나는 묻지마 식 이라크 철군이고 또 하나는 시리아 온건파 반군에 대한 지원 거부다. 오바마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화학 무기 사용이야말로 “빨간 선”이 될 것이라 공언하고도 실제로 이를 사용하자 조용히 넘어갔다. 이로 인해 미국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그 빈 공간을 알 카에다를 능가하는 극렬 회교단체 ISIS가 파고들었다. 오바마가 이런 실책을 범하지 않았던들 ISIS가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를 널리 장악하고 하루 300만 달러의 세수를 자랑하는 테러 집단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ISIS의 팽창을 3년 동안 묵묵히 지켜보던 오바마가 드디어 반격을 선언했다. 무고한 미국인과 영국인의 목을 자꾸 자르는 것을 더 이상 볼 수만은 없었나 보다. 오바마의 이번 결정은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 여론에 떠밀린 인상이 짙다. 미국인의 2/3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과연 오바마처럼 내키지 않는 지도자가 ISIS를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중동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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