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당신을 추억해야 한다면
난 여행을 떠날 거야
우기 지난 모로코에 가면 와디를 따라
낙타를 타고 모래 언덕을 넘을 거야
백조 한 마리가 우물로 내려오면
나는 슬픔을 참느라 길게 늘어난 목에
오래 입을 맞추어야지
춤을 출거야, 태양의 흑점 한 가운데서
가볍게 뛰며 경쾌한 왈츠를 추어야지
모로코하고 읊조릴 때 흐르는 음률을
낮은음자리표로 붉은 카펫에 그려 넣을 거야
카사블랑카에 들르면
집을 잃은 군인과 술집 여가수의 이야기가
비처럼 흐르는 영화를 볼 거야
키스신 뒤쪽으로 폭죽이 터질 거야
잘 익은 포도주는 거리에 흥건히 엎질러질 거야
아, 나는 철없이 취할 거야
그곳에 가면 푸른 수염을 기른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보다 먼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당신은 이미 늙어있을 거야
오래 전 당신의 외투주머니에서 끄집어 낸
낙타의 발자국들이 푸르게 피고 있을지도
/ 임봄 (1970-) ‘모로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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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쩌면 이별로부터 시작된다. 이별한 뒤에야 고독하고 자유로운 사랑의 또 다른 여행은 시작된다. 태양의 흑점 속에서 추억의 왈츠를 추는 화자, 이국적 이미지들과 함께 이별은 환상의 세계를 떠돈다. 춤을 추듯 느리게 추억이 늙어간다면 먼 후일 푸른 수염의 연인은 다시 만나지 아니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랑을 잊는 사랑의 왈츠. 그 슬픔이 젊고 싱싱하다.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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