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급증하면서 ‘메르스 공포’가 한국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또 이런 공포는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주 한인사회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당장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많은 한인들이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으며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경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TV 화면과 신문 지면이 메르스 사태로 도배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공포와 우려는 당연하다.
혹자는 메르스 감염의 현실적 확률을 고려해 볼 때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핀잔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포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공포의 크기는 확률에 비례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통제력을 가질 수 없을 때 더욱 그렇다. 원자력 사고로 죽을 확률이 스키를 타다 죽을 확률보다 훨씬 낮지만 우리는 원자력 사고를 훨씬 무서워한다. 바이러스 감염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사태 역시 그랬다. 과학적으로 보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 심지어 광우병 걸린 소의 고기를 먹는다 해도 꼭 광우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온갖 광우병 괴담들이 나돌았으며 광화문에는 수만명이 모여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명박 정부는 소고기 수입 협상과 관련한 내용은 쉬쉬했다. 그러면서 위험관리 커뮤니케이션은 확률교육이 아님에도 국민들의 불안을 근거 없는 것으로만 몰아붙였다. 광우병 공포는 신뢰를 잃은 정부가 자초한 사태였다.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 공포와 괴담은 이를 상당히 닮아 있다. 사태 초기 정부는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인식했다. 전염성이 별로 높지 않다는 식으로 애기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인식을 비웃듯 메르스 환자는 급속히 늘어 확진환자가 30명을 넘어서고 격리대상자는 1,400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엉망이다. 한마디로 ‘우왕좌왕’ ‘갈팡질팡’이다. 그러면서 메르스와 관련한 갖가지 괴담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불안을 키우고, 불안이 생겨나면 사람들은 그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소문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메르스 괴담의 근원은 바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라 할 수 있다. 괴담들이 급속히 퍼지자 한국정부는 유언비어 유포자를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자 그런 각오와 의지로 메르스를 초기에 차단했더라면 지금의 상황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과 비아냥이 온라인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한 번 신뢰를 잃은 정부가 영을 제대로 세우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청해진 해운 실소유주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되자 “유병언은 타살됐다” “사체는 유병언이 아니다”라는 등의 괴담들이 끈질기게 나돌았다. 관계당국은 이런 괴담들을 잠재우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하지만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정부의 무능을 24시간 TV를 통해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불법 개조한 과적 선박이나 바이러스보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더 위협하는 것은 무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이다. 괴담은 바로 이런 무능과 불신을 먹고 자란다. 그러니 ‘괴담 공화국’의 1차적 책임을 국민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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