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온 지인이 이제 7개월이 된 딸에게 곰인형을 선물해주었다. 아기는 자기 키의 삼분의 이 정도 되는 크기의 곰인형을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답답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는 곰인형을 딸 앞에 갖다대고 ‘왕’ 하고 놀래키는 소리를 내었다. 그 바람에 놀란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실수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그날 내내 딸은 경계의 눈으로 인형을 쳐다보았다. 무서운 듯 발가락 끝으로 인형을 건드려보다가 기분이 나빠지면 다시 울었다.
손으로 인형을 때리기도 했다. 나는 혹여나 딸이 털 달린 복슬복슬한 것에 트라우마가 생길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이 눈에 혹여나 인형이 띌까 조바심내며 멀찍이 치워두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되던 아침 놀이방에 들어간 나는 아이가 굉장히 신난다는 듯 까르르 웃으면서 곰인형을 만지며 놀고있는 걸 보았다.
그날 이후 곰인형은 딸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되었다. 아이는 다른 장난감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빛으로, 마치 정지해 있는 사물이 아니라 숨을 쉬는 친구를 대하듯 곰인형을 대한다.
아기와 인형 간에 새롭게 결속된 특별한 관계를 보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한 가지는 내가 딸이 무엇을 만나고, 어떤 감정을 갖는지를 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아기는 인형을 무서워하게 됐고 또 내 걱정이 무색하게 스스로 인형에 대한 두려움을 호감으로 바꿨다.
두번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인형을 친근하게 대하는 아이의 태도다. 어른인 나는 한순간의 기분 상함을 떨치지 못하고 친했던 친구들과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하는데, 아이는 곰에 대한 무서움도 떨쳐버리고 이틀만에 친구가 되었다.
인형을 보며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저렇게 천진하게, 마음에 쌓아두는 것 없이 주위 사람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때문에 나를 위해 공부할 시간이 하나도 없다고 불평했는데, 사실 아이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아이가 인형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나갈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나 역시도 아이에게 좋은 관찰 대상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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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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