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란, ‘Inner Flares 8’
바람이 읽어 내리는 경전 소리인 듯
촌스러운 얼룩무늬 차양 펄럭이는 그 집 추녀 끝으로
막 점등한 알전구 불빛 같은 노을 깃드는 저녁
듣는 이 없는 늙은 중의 염불처럼
혼자 웅얼대는 텔레비전 소리 등지고 앉아
조림반찬 몇 가지와 장국 한 그릇 놓고
오랜 중독처럼 혼자 먹는 밥
미명을 허물 듯 밥을 허물면
바닥을 드러내며 점점 가벼워지는 밥그릇
종점이란 말도 이곳으로 오는 모든 길 위에
제 몸을 다 비우고 마침내 본산(本山)에 이르는
순례의 다른 말인 듯하여
여기서 몸 수그리며 밥 먹는 일은
길 나서는 세상 모든 허물어지는 것들에게
뼈마디처럼 단단한 마음을 다해
간절한, 아주 간-절한 경배를 올리는 일
김명기 (1969- ) ‘종점 식당’
홀로 있는 자는 철학자가 된다. 저물어오는 종점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여행자도 그럴 것이다. 저만치 텔레비전만 웅얼거리고 허기진 여행자는 중독처럼, 습관처럼, 밥을 먹는다. 마지막 역, 그리하여 시작이라는 본산의 장소이기도 한 종점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조용한 장소인가. 여행자는 여기 영원히 갇힐 수도 있고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장소는 이러한 종점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게다. 허물어져가는 것들에게 수그려 경배를 올리듯 밥을 먹는 쓸쓸한 여행자, 그가 있는 풍경이 사소하고도 숭엄하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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