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유명했던 록그룹 ‘The Who’의 공연을 보았다. 지금은 70이 훨씬 넘어선 노장들이 되어 있었다. 어두운 공연장 청중들의 대부분도 반백의 노년층이었다. 그들 시대의 젊음을 되찾으러 왔을 것이다.
연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청중들은 모두 일어선 채로 손뼉을 힘차게 치면서 가사를 하나하나 따라 부른다. 젊었던 지난 시절 추억의 부활이다. 젊은 정열의 열기가 공연장을 데운다. 전에 보았던 젊은 층 록 콘서트 장의 열기 못지않았다. 아니 그들보다 더 성숙된 질서의 열정을 보여준다. 장내엔 마리화나 냄새도 없다. 연주자들은 잘 다듬어진 원숙한 연주로 예전보다 더 세련된 음악을 들려준다. 얼굴에 보이는 세월의 상처를 선글라스로 가렸을 뿐…
같이 간 친구는 시간을 되돌려 예전 직업 록커로 돌아간 듯 환한 얼굴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클래식이건 팝이건 음악은 지나간 추억을 불러오고 그 추억 속에는 항상 친구가 있다고 한다. 철도 안든 대학 시절 아마추어 록그룹을 만들어 음악을 공유했었던 이 친구와는 그 후 40여년이 흐른 후 재회할 수 있었다. 작년 그의 부인이 선천성 정신·신체 발달 장애인인 딸을 집에서 간호하는 남편에게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화로 알려오면서 시작한 음악여행이 계기가 되었다.
이번 여행은 작년부터 매년 계속하기로 한 음악이 있는 곳에서의 만남이다. 위로와 젊음의 재충전을 위한 만남이다. 그는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나는 버스를 타고 온 라스베가스에서 2박3일의 일정으로 가진 짧은 만남 중에 추억의 음악공연 ‘The Who’와 ‘Cher’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서로의 공통분모인 음악이 있어 그에게 하는 위로와 격려의 말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 음악이 없었다면 위로와 격려의 말이 허공에 멋 적게 떠버리며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픈 딸을 25년간 보살피며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어 외부와의 교류가 드문 그는 단절된 일상이 가끔은 고도 같고 암실에 갇힌 듯 우울하고 슬픈 적도 있으나 정든 딸을 볼 때마다 항상 어여뻐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게서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성실한 사랑이 보인다. 꽃을 피우며 살아 숨 쉬는 사랑이다.
난 그에게 97세의 김형석 교수가 20여년을 어머니와 부인의 병간호를 하고 그들을 떠나보낸 후에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20년이 걸렸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금년의 짧은 음악 여행을 마치고 헤어지면서 우리는 정열을 잃지 않은 ‘The Who’와 70이 넘어서도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는 ‘셰어’처럼 우리도 정열과 노력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LA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물어볼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김형석 교수의 책 이름이 생각났다. ‘100년을 살아 보니’ - 이를 카톡으로 친구에게 보냈더니 시카고 책방으로 달려가 곧 구입해서 읽어 보겠다는 연락이 왔다…이번 만남이 내게 그랬듯이 고단한 그의 삶에도 잠시의 휴식이 되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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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청원/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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