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대로에서 한 블록 사이 뒷골목의 한 낮은 노숙자들이 넘쳐난다. 길은 그들의 추레한 반려견이 내는 냄새와 마리화나 연기, 붐 박스 음악 소리와 술 취한 고성이 점령하고 있다.
시내에 볼일이 있던 어느 날, 축제로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지나가게 된 그 길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건너편에 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에서 본 그들은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노숙자들의 기도라니. 미국생활 30년 넘은 동안 처음 보는 광경이다. 인간의 겉모습과 내면 모습의 상관관계에서 저지르는 실수를 나도 하고 있는 건가? 머릿속에 혼란이 일었다.
문득 밀레의 ‘만종’이 떠올랐다. 흔히 수확한 감자 바구니를 두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명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자외선 투사 작업을 해보니 초벌 그림에서 ‘감자 바구니’는 ‘어린아이의 관’으로 밝혀졌다. 미술 시간에 배웠던 평화로운 모습이 아닌 ‘죽은 아이를 위하여 부부가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슬픈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때 느꼈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믿음의 허구에 대한 헛헛함이 다시금 몰려 왔다.
종교적인 기도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한 가지쯤의 기도를 품고 산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절히 바라면 성취되리라는 행복한 확신과 함께. 그 노숙자 젊은이들의 기도가 성취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던 간에 진정으로 행복했을 것만은 확실하다. 그 모습을 제대로 보았던 것에 감사하며 기도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도 각자의 모습으로 기도하고 있지 않을까. 겨울 나무는 찬란한 여름의 푸르름을 위해서, 바람은 민들레를 위해서, 비는 생명의 소중함을 위해서...
집으로 돌아와 바라본 뒷마당의 하아얀 쑥꽃이 이렇게 예뻐 보이긴 처음이다. 어떤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다. 이 시도 그의 기도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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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숙 /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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