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나가는 건축가 ‘알고보니 무면허’ 결국 덜미… 실형에 이혼소송까지
폴 J. 뉴먼은 수상경력 화려한 건축 가로, 성공적인 전문인으로 명성을 누려왔다. 그러나 면허를 위조한 무 면허 건축가였음이 드러나면서 그 의 삶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지난주 화요일 뉴욕 주 사라토가 법정에선 지난 4월 뉴욕검찰청이 기소한 한 남자에 대한 최저 2년4개월에서 최고 7년
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피고는 면허도 없이 건축가로 성공적인 삶을 누려온 49세의 중년남성 폴 J. 뉴먼이었다. 중절도 및 위조 등 6개 혐의로 기소된 후 징역형을 선고받은, 어찌 보면 흔한 형사 케이스이지만 ‘성공한 전문인’의 삶이 잠깐의 유혹에서 시작되어,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면서’ 안이한 변명으로 미루는 동안 어떻게 한순간에 파멸의 길로 들
어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날 뉴욕 주 사라토가 법정의 맨 뒷줄에는 잿빛 머리의 한 남자가 자신의 재판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이날 배정된 안건의 세 번째가 그의 차례였다. 어린이 성추행 용의자와 음주운전자에 이어 재판을 받게 된 폴 J. 뉴먼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지난 4월17일에 끝나 버린, 그가 체포되면서 사라져버린 행복했던 날들을.
“좋은 날들이었지요. 정말 좋았어요”라고 뉴먼은 말했다. 그는 뉴욕 주 알바니 인근 캐피탈 리전 지역의 건설업계에서 존경받는 전문직 인사였다. 제도사, 그래픽 아티스트, 건축가로 작게는 보석상 리노베이션에서 크게는 시니어 커뮤니티까지
1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뉴욕 주 트로이의 숲속 언덕에 자신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집에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았으며 리틀리그, 풋볼, 야구의 코치도 맡아 왔다.
그러나 이 그림 같은 삶의 거의 모든 것은 거짓말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그는 건축가가 아니었다. 주 면허도 없었다. 그가 늘 사용했던 ‘뉴욕 주의 등록 건축가’라는 고무도장은 위조였다.그 도장, 위조된 서명, 허위 서류 등은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스캐폴딩(비계)처럼 든든한 기초가 없는 것들이었다.
당연한 질문이 뒤 따른다 : 왜? 왜 그는 면허를 따지 않았는가? 왜 그처럼 성공한 사람이 결국은 수갑을 차게 된 위험을 무릅썼는가? 왜 주 검찰총장이 사인펠드(TV 시트콤)의 조크를 빗댄 야유를 감수하면서까지?
지난주 뉴욕 주 사라토가 카운티 법원은 폴 J. 뉴먼에게 최고 7년의 징 역형을 선고했다.
명쾌한 대답은 없다. 절차들이 무시되고 규정들이 어겨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삶은 순조롭게 계속되었다 : 아이들이 태어나 자랐고 리틀리그의 시즌이 계속되었으며 그는 언제나 보다 나은 다음 비즈니스 찾기에 바빴다. 지난 거짓말을 덮기 위해 새로운 거짓말이 필요했으며 자신의 삶을 채색하기 위해 더 많은 위조와 더 많은 속임수가 계속되었다.
뉴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일찍부터 알았다. 뉴욕의 건축가인 마이클 체먼스코는 1980년대 뉴먼이 고교생 인턴으로
한 건축사무실에서 일할 때 처음 만나 그를 눈 여겨 보았다. 그리고 1989년 자신의 건축회사 ‘신테시스 아키텍트’를 설립했을때 그를 제도사로 채용했다.
“폴은 비전도 있었고 재능도 뛰어났지요” 특히 그가 손으로 그린 도면 제작은, (컴퓨터가 대신하기 전까지는) 정말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체먼스코는 칭찬했다. 뉴먼의 뉴욕 그렌빌 워터스 에지 레스토랑 설계로 회사는 2005년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
은퇴한 건축감독관 래리 드쿨르는 뉴먼이 제도사로만 남아있기엔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난 그가 건축가 면허
시험을 보아 벌써 오래 전에 정식 건축가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건축면허를 따려면 상당기간의 실무 경험과 정규 교육, 그리고 상당히 어려운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 특히 면허시험은 며칠에 걸쳐 치러야 하는 길고 힘든 시험이다.
뉴먼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숲이 우거진 언덕에 이층집을 지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신테시스 건축회사는 계
속 성장했고 뉴먼은 10년 넘게 제도사로 일하다 2005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겠다며 사직했다.“ 폴은 마치 지구상에서 사라진것” 처럼 그 이후 소식이 끊겼다고 체먼스코는 말한다.
뉴먼은 ‘코히전 스투디오’라는 회사를 시작했고 2010년 무렵엔 제도사만이 아니라 ‘정식 면허 갖춘 건축가’로서 다수의 빌딩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모든 등록 건축가에겐 자신의 라이선스 넘버가 있다. 검찰에 의하면 뉴먼은 온라인에서 한 건축가의 면허 넘버를 따다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 고무도장도 만들어 에너지 규정준수 자격증, 검사필증, 필드 리포트 등 건축에 필요한 관련 서류에 계속해서 사용했다.
알바니, 렌세레어, 사라토가 등 최소한 3개 카운티에서 위조 서류를 사용했다고 검찰은 말한다.
그의 사업은 번창했다.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뉴먼은 노스그린부시의 패스처 프로젝트로 알려진 70채 이상의 타운하우스건축가로 채용되었으며 사라토가 카운티의 아파트먼트, 알바니의 시니어 커뮤니티의 건축가로도 일했다.
이 무렵 사업의 확대를 꿈꾼 뉴먼은 플로리다를 방문, 마이애미의 뉴호프 미셔너리 침례교회의 랜달 홀츠 목사를 만나 교회의 행정센터 건물 확대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매우 사교적인, 매우 기분 좋은 친구였다”고 홀츠 목사는 기억한다.
뉴먼은 설계는 제시했지만 프로젝트를 완공하는 데는 실패했다. 폴 때문에 3만~4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고 그 프로젝트 자
체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거래였는데 시작조차 안 된 겁니다”
홀츠목사는 플로리다 건축 위원회에 제소했고 뉴먼은 2015년 1만 달러의 벌금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플로리다 건축위는 뉴먼이 ‘면허 없이 건축가로 일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성공한 건축가’ 뉴먼의 삶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추락의 시작이었다.
2016년 이 케이스는 뉴욕 주 검찰청으로 조회되었고 뉴먼은 4월17일 체포되었다. 담당검사들은 뉴먼 케이스를 ‘반들레이 인더스트리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반들레이 인더스트리’는 TV 인기시트콤 ‘사인펠드’에 나오는 유령회사의 이름이어서 당장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고 뉴먼의 스토리는 상당수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다.
뉴먼의 사생활도 이미 풍랑을 겪고 있었다. 이혼 소송 중이었고 그는 자신이 지은 언덕 위의 이층집에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새 사람을 만났고 6월 그가 중절도, 위조 등 6개 관련 혐의에 유죄를 인정하고 보석으로 풀려난 며칠 후 새 아들이 태어났다.
지난 주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왜 건축가 면허시험을 보지 않았는가. 그는 코치를 맡았던 리틀리그
이야기를 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 와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했어요…” 그러면서 말했다. 맨 처음 규정을 어기며 거짓말을 했던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멍청한 실수”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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