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30일~1945년 2월16일)는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 이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지에 시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편입했다.
윤동주는 도시샤 대학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정지용이 수학하고 있어서 정지용과 함께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된다. 일본 경찰로부터 항일 운동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불량선인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다가 1943년 7월 14일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 사상범으로 일본경찰에 체포 구금되어 교토 지방재판소의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이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판결문 내용은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했다”고 적고 있다.
윤동주는 태생적으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윤동주는 자신이 시인으로 태어났음을 슬프게 생각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순수하고 지적인 심성으로 조부의 사랑을 극진히 받았는데, 개미 한 마리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인간적인 사람이었고, 명경처럼 청명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역사가들은 그를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인정했다. 그의 시는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을 소재로 했다. 그의 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는 10대 때 장개석의 국민당이 만든 ‘낙양군관학교’에 입학하여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준비했으며,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호소하여 ‘학병모집‘을 하는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가담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윤동주와 함께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옥고를 당했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의문의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비슷한 시기에 문인 이상도 폐암말기에 폐암 치료차 일본의 도쿄의대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음날 일제 고등형사에게 사상불량 조선인으로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지 3일 만에 구치소에서 옥사했다.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 등 친일문인들은 반역자의 수치스러운 불명예를 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윤동주는 애국자로서 서정적인 민족 시인으로 추앙 받고 있다. 진실한 삶의 울림은 세월이 갈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일본 총리 아베가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여 문 대통령을 접견해서 올림픽이 끝나면 한미훈련을 강행하라고 문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다. 일본 땅도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서 아직도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라고 여기고 있는지 주제넘은 내정 간섭을 했다. 그의 정치적이고 의도적인 가당찮은 만용을 보니, 마치 일제치하의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가 한일 합방을 위해 힘없는 고종을 협박하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에서 치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미·중·일·북한의 힘겨루기 소용돌이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대한민국의 존재감이 위태롭고 안쓰럽게 보인다.
나는 아베에게 일본인의 양심을 위해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베는 윤동주의 시집을 읽어보고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진심으로 참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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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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