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와락 안기는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새로운 이야기로 풋내음도 나고 알 만한 이들의 여유로운 근황도 있으며 나 같은 신출내기들의 어설픈 이야기도 있고 때론 당찬 소신 발언으로 속이 다 뻥 뚫리게 하는 네가 있어 새삼 맛있는 아침을 맞는다. 내 어릴 적 아침은 문지방 건너에서 들리는 아버지 신문 뒤적이는 소리와 진한 잉크 냄새로 시작했다.
더구나 당시 신문은 부지런한 중고교생들의 흔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수단이었다. 복잡한 거리나 차 안에서도 신문을 팔았다. 내 두 남동생들 역시 새벽에 집집마다 신문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신문을 잊고 살아왔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로 쉽고도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초고속화 시대에 웬 신문이 필요한가 싶었다. 아마 까마득히 잊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월요일 아침이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내리던 비가 그치며 오랜만에 맑게 개였다. 아침이 유난히 예뻤다. 우린 평소 오전 6시에 세탁소를 연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가게를 열었다.
그때 어렴풋하게 문 앞에 무엇인가 있었다. 얼른 주워 들고 보니 ‘한국일보’였다. 아! 커피향보다 더 구수한 고향 내음이 났다. 잊고 있었던 아침 냄새였다. 미국에서의 ‘조간신문’, 이렇게 일찍 배달까지 해주는 것이 반갑기도 하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날마다 새 얼굴을 하고 신문이 온다. 어제도 왔었고 오늘도 왔고 내일도 올 것이다.
오늘밤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몇 줄 안 되는 일상을 두서없이 쓰다 친구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구두쇠 해숙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가 등록금을 내주었는데 그 오빠네가 담배와 신문을 팔았다. 그때는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친구에겐 창피한 일이었던 것 같았다.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체육도 잘했던 팔방미인, 하지만 늘 기죽어 있던 친구. 그런 그녀가 대학 국문과 수석 졸업과 동시에 신문기자가 됐다. 열정적으로 변한 그녀 모습이 참 좋았다. 지금도 신문 속엔 그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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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 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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