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프간 테러로 숨진 AFP 사진기자 샤 마라이 스토리
▶ 서방기자들 떠난 후에도 목숨걸고 남은 현지인 기자 절망과 고통 카메라 담아 취재현장 참변… 고향 묻혀

지난 30일 아프간 카불에서 테러로 숨진 AFP 사진기자 샤 마라이(오른쪽)와 2014년 가족과 함께 총격 피살된 AFP 기 자 사르다르 아마드. 천국에서 다시 만났을 두 기자의 사진을 1일 파키스탄에서 열린 추모 모임에 참석한 한 기자가 촛불 에 비추며 들고 있다. [AP]
지난 월요일인 4월30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비롯한 3곳에서 3차례의 자살폭탄과 한 차례의 총격 등 4차례의 테러가 발생, 11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4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자 중 10명은 언론인들이었다. 카불의 두 번째 테러에서 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범이 기자증까지 목에 걸고 언론인으로 위장해 인파 속으로 들어가 자폭하는 바람에 언론인 피해가 컸다. 세계 최악의 언론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밝혔다. AFP 통신 사진기자와 BBC의 29세 기자도 숨졌다. 대부분의 서방기자들이 떠난 아프간에서 목숨 걸고 생과 사의 참상을 보도하던 용감한 이들은 모두 아프간 현지인 저널리스트들이었다. 다음은 이날 숨진 AFP 사진기자 샤 마라이(41)의 스토리다.
1990년대 내전과 탈레반 압제의 암울한 시기를 겪으면서도 아프간의 사진기자 샤 마라이는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2001년 미국의 침공이후 계속되는 유혈사태를 마주하면서 그는 이 파멸의 현장에 갇혀버린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공유하는 절망의 메시지를 사진을 통해, 기사를 통해 전했다 :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겪으면서 마라이는 너무나 일상화되고, 너무나 잊혀져 버린 인간의 깊은 고통에 카메라 렌즈를 맞추며 계속 증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월요일 카불 테러 현장으로 달려간 수십명 보도진 속에도 그가 있었다. 두 번째 자살폭탄이 터지면서 25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9명이 마라이를 비롯한 언론인이었다. 이날 10번째 언론인 희생자는 BBC의 29세 아프간 지국 기자 아마드 샤로 동부 코스트에서 차를 타고 가다 괴한의 총격에 숨졌다.
봄은 세상 모든 곳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생명의 계절이지만 오래 끌어온 전쟁에 짓눌린 아프간에선 시체들만 쌓여가는 절망의 계절일 뿐이다. 이곳에서의 죽음은 어느 누구도 - 구조대원들, 경찰들, 상인들, 의사들 - 피해가지 못한다. 대부분 전쟁에선 최전선이 따로 있지만 이곳에선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최전선이 되어가고 있다.
일주일 전에도 투표등록을 하려고 줄 섰던 사람들이 테러공격을 당해 57명이 숨졌다.
유전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가정에서 태어난 마라이는 생후 15일짜리 어린 딸을 비롯한 6남매의 아버지이며 혼자된 어머니와 3명의 맹인 형제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다. 마라이의 AFP 사진기자 봉급이 이들을 비롯한 많은 친척들의 생계를 해결해 왔다.
이날 마라이와 함께 숨진 다른 언론인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 약혼하고 결혼을 앞둔 한 카메라맨은 아픈 어머니 치료를 위해 최근 자전거를 80달러에 팔아야 했으며, 한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젊은 라디오 여기자는 가족을 부양하면서 파트타임으로 대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대우가 나은 직장으로 막 옮겼다고 좋아했었다.
“사건은 폭발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 아침에 살아서 집을 나갔던 한 남자가 세 시간 후 산산조각 난 시신으로 관에 담겨 돌아왔을 때 터져 나오는 한 어머니의, 한 누이의, 한 아내의 울부짖음과 함께 시작된다…오늘 자살폭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그들 모두는 꿈에 가득 찼던 우리의 동료들이다”라고 톨로뉴스의 기자 파란나츠 프로탄은 동료 카메라맨의 장례식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애도했다.
마라이는 1990년대 탈레반 정권시절 AFP 통신의 운전기사로 출발한 후 사진을 금지했던 탈레반 정권의 눈을 피해 몰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 아프간에 발을 딛기가 힘들었던 서방 언론들은 마라이 같은 용감한 현지인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의 몰락이후 희망에 부풀었던 마라이는 선거기사를 보도했고 황폐한 나라의 재건 소식도 열심히 전했다. 그러나 끝없는 전쟁의 반복 속에서 절망한 많은 아프간인들 처럼 최근엔 마라이도 희망을 잃어버렸다.
아프간 전쟁은 점점 악화되었고 하루에 50명이상이 사망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사진기자로서 마라이의 업무는 자살폭탄 현장으로 달려갔다가 이어지는 장례식, 그리고 절망과 슬픔 속에 무너지는 남은 가족들을 취재하는 일의 반복이 되었다. 2014년엔 마라이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AFP의 기자 아마드 사르다르가 연말에 한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함께 총격피살 당하는 참사도 발생했다.
전쟁이 악화되면서 가족들은 마라이에게 유럽으로 가거나 직업을 바꾸라고 권했다. 그 말에 마라이는 웃기만 했다.
그러나 2016년 AFP 블로그에 그는 “이곳의 삶은 탈레반 시절보다 더 불안하고 힘들어졌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마라이의 시신은 카불 근교 그의 고향 언덕 ‘꽃들의 계’에 묻혔다. 어머니의 통곡과 눈먼 아들의 배웅 속에 떠난 마라이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맘은 마지막 기도에서 경고했다 - “거리는 매일 피로 물들어가고 있다. 오 압제자여 - 남은 자들의 고통이 언젠가는 당신을 파멸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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