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저 500~2,500m 작업‘3형제’, 조종실서 9개 모니터 보며 제어, 영·미 독무대 로봇시장 도전장
▶ “실적 못쌓으면 10년 공들인 기술 묻혀… 정책 지원 절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수중건설로봇사업단 연구원이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수중건설로봇센터에서 트랙기반 해저 중작업용 로봇 ‘우리-R’ 조종 시연을 하고 있다. <포항=오승현기자>
지난해 10월 육지에서 23㎞ 떨어진 경북 울진 동해상 수심 100m 수중암초 ‘왕돌초’. 굴착기 모양의 수중로봇 ‘URI-R’이 단단한 화강암에 트렌칭(케이블 등을 매설하기 위해 암반 등을 파내는 작업)용 칼날을 들이 대자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위 특수선에 마련된 조종실에서는 두 명의 연구진이 9개의 모니터를 통해 ‘URI-R’의 작업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며 계획에 맞춰 작업을 진행했다. 로봇 주변을 보여주는 화면은 검뿌연 흙뿐이었지만 수중 음파를 탐지하는 360도 소나 장비 등 첨단 센서가 현장보다 더 생생하게 모든 상황을 꿰뚫어볼 수 있게 했다.
‘URI-R’이 케이블을 놓을 길을 잘 닦아놨다면, 그다음은 ‘URI-T’의 차례다. 마찬가지로 수중 작업용 로봇인 ‘URI-T’는 로봇 팔 등을 갖춰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보다 정교하게 케이블이나 파이프를 원하는 위치에 매설한다. 암반 같은 단단한 장애물이 없는 진흙 지형에서는 고압의 물을 분사하는 ‘워터젯’으로 직접 트렌칭 작업도 할 수 있다.
2009년 기획을 시작, 2013~2019년 6년에 걸쳐 813억원을 투입해 만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수중로봇들은 이처럼 실해역 실증실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며 10년 만에 성과를 거뒀다. 다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연구개발(R&D) 단계일 뿐, 본격적인 결실을 맺으려면 실제 작업 현장에서 이 로봇들이 활용되고 수익도 내야 한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해 2022년까지 4년간 진행되는 ‘수중건설로봇 실증 및 확산’ 연구과제는 사업화를 위한 경험 축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실제 현장에 투입될 채비를 하는 ‘URI-L’, ‘URI-T’, ‘URI-R’을 만나러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를 찾았다.
초대형 수조와 크레인, 넓은 적재장을 갖춘 센터에 들어서니 초대형 장비 ‘URI-T’와 ‘URI-R’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육중한 체구에서 느껴지는 ‘늠름함’은 실험실을 떠나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들어 해저를 누비고 싶어하는 듯했다.
30톤짜리 ‘URI-R’은 궤도바퀴에 길쭉한 컨베이어벨트 모양의 트렌칭커터를 단 형태가 마치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를 연상시켰다. 최대수심 500m에서 암반을 부술 뿐만 아니라 포크레인처럼 다목적 팔을 달면 땅을 파고 덮거나 구멍 뚫기, 고르기 작업이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장인성 수중로봇건설사업단장은 “‘URI-R’은 해상에서 한나절이면 다목적팔과 트렌칭커터를 바꿔 달 수 있다”며 “기존 제품들과 비교하면 융통성이 뛰어나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음파로 지형 탐지가 가능한 ‘360도 어라운드뷰’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바로 옆에 놓여있는 중작업용 ‘URI-T’는 최대 2,500m 수심에서 해저 케이블을 매설하거나 무게가 나가는 큰 구조물도 설치할 수 있다.
특히 600마력에 달하는 워터젯으로 물을 분사해 최대 깊이 3m의 도랑을 팔 수 있으며 로봇 팔로 다양한 수중작업이 가능하고 탐지 장비도 갖췄다. ‘URI-R’이 바닥에 붙어 일한다면, ‘URI-T’는 바다거북처럼 자유자재로 물속을 헤엄치며 작업한다.
이들보다는 가벼운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URI-L’은 최대 2,500m 수심에서 건설작업장 주변의 환경 조사를 하거나 수중 구조물을 시공하는 역할이다. 절단이나 청소, 용접 같은 구조물 유지보수에도 투입된다. 앞선 로봇들이 20~30톤의 중장비라면 ‘URI-L’은 1.5톤으로 상대적으로 귀여운 축에 속한다.
이들 수중로봇 3형제는 어떻게 실제 바다에서 활용할까. 장비들을 바다로 내보내려면 대형 트레일러 차량이 우선 필요하다.
크레인으로 차량에 올려 항구로 가져간 뒤에는 특수선에 실은 뒤 다시 바다로 내려 작업을 시작한다. 로봇에는 사람으로 치면 탯줄처럼 전력을 보내주고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연결케이블이 달려있다. 특수선 위의 조종실에서 이 선을 활용해 로봇을 움직인다.
센터에 옆에는 이처럼 배 위에 실어 로봇을 조종하는 컨테이너 모양의 조종실도 볼 수 있었다. 두 명의 조종자가 앉아 9개의 모니터를 보며 로봇을 운용한다.
현장을 소개하는 한 연구원은 “로봇이 유압체계로 작동하는 만큼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는지, 기름의 온도는 적절한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며 “반자동 ‘스마트 조종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버튼만 누르면 로봇팔이 상당 작업을 진행하고 세세한 부분만 작업자가 개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수중로봇시장은 미국과 영국의 독무대다. 석유나 가스 채취업이 발달하다 보니 자연스레 탐사 로봇이 발전했다. 한국 내 사업자가 해저 케이블이나 파이프를 설치하려면 이들로부터 로봇을 빌려야만 한다. 장 단장은 “빌릴 곳이 한정돼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라며 “한국이 지불하는 연간 장비 임차료만 수백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원 탐사용이 대부분이었지만 해상풍력이나 해양플랜트, 해상 교량, 통신케이블 등 해저 산업은 점차 다양해지고 국내에서도 수요가 늘고 있다.
전세계 수중건설로봇 시장 규모는 매년 7%가량 성장하고 있으며, 2017년 17억7,000만 달러에서 2022년 24억9,000만 달러까지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수중로봇 개발에 나선 이유다.
수중로봇들의 목표는 그저 해저 케이블이나 파이프 공사에만 끝나지 않는다. 미래에는 해저도시를 만들고, 새로운 해저자원 개발에 나설 수도 있다. 장 단장은 “각국이 본격적으로 해저 개발에 뛰어들 때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들 수 없으면 경쟁에 밀릴 수밖에 없다”며 “이제 시작이지만 먼 미래 해양 강국의 초석을 쌓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인터뷰] 장인성 수중건설로봇사업단장“트랙레코드(실적)를 쌓지 못한다면 10년간 공들여 만든 장비와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습니다”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만난 장인성(사진) 수중건설로봇사업단장은 이같이 걱정부터 쏟아냈다.
깊은 바닷속에서 암반 파쇄와 케이블 매설, 각종 구조물작업을 척척 해내는 수중로봇 3형제인 URI-L , URI-T , URIR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막 2단계 사업화를 시작한 만큼 기대가 앞설것이라는 기대와 정반대였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수중건설로봇의 꿈을 키웠다. 당시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의 연구기획 사업으로 시작해 2010년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그 해 하반기 예비타당성 조사의 관문을 넘지 못했다.
이듬해인 2011년 다시 기획에나섰고2013~2019년1단계로 로봇들을 개발하고 인프라를 만드는 1단계 연구를 따내 지금까지 달려왔다.
물론 앞으로 4년간의 사업화 연구를 다시 진행하는 만큼 상황은 희망적이지만 현실의 벽은 이보다 높다는 게 장 단장의 말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장비라고 해도 확실한 실적이 없는 장비를 해양 개발업체에서 쓰려고 하지 않는다” 며 “국내나 국외, 정부나 민간 모두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실제 사업의 경우 공사기간이 곧 돈이고 품질이 생명이다. 이미 검증된 외산장비가 있는 상황에서 20~30% 저렴한 국산신장비를 쓰는 데 위험부담이 적지 않다보니 선뜻 가격만 보고 선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장 단장은 “실제 많은 연구개발(R&D) 과제들이 사업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구단계에서 멈춘다” 며 “우리도 많은 트랙레코드를 쌓아야 자신감이 더 해지는 만큼 최대한 기회를 찾고 싶지만, 극단적으로 공짜로 공사를 대신해준대도 선뜻 현장을 내주는 경우가 없다” 고 토로했다.
그는 바다 관련 과제들이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등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퍼져있어긴밀한 협력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며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 고 덧붙였다.
<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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