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후반 코리아 게이트로 알려진 미의회 청문회를 오늘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한국정치사와 한미 관계사에 한 부끄러운 장면을 정직하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 나왔다. 흔히 박동선사건으로 알려졌거나, 김형욱의 증언으로 기억되고 있는 최근세사다. 그 정치사 속에 이 책의 저자가 있다. 그는 전문위원 겸 통역으로 코리아 게이트 특별위원회에서 일했다. 76-78년 의회 회기 처음부터 끝까지 그 현장에서 일한 안홍균이 그의 회고록을 한국일보 이종국 국장이 면담으로 기록하였다. 88세의 노인이 역사를 남긴 최적의 수단이 대담 형식으로 문필가의 손을 거쳐 역사서로 남게 되었다. 좋은 팀워크의 표본이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분이 그 역사를 적어가기 어려울때 좋은 문필가가 나타나 사가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사실 그 현장에 있었던 분이 사가의 양심도 갖추었고 문필가의 재주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정일품의 회고록이 될수 있었다.
안홍균씨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적인 심성을 갖춘 분으로 유머 감각과 재치가 뛰어나다. 그는 지금도 영화광이며 영화평론가의 안목을 지니고 있다. 한때 신상옥·최은희 부부와 가까워 그들과 ‘징기스칸’이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적도 있다.
대담자가 6개월 한국일보에 연재한 이 역사서는 그래서 독자의 마음을 이끈다. 역사와 문학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그 한 예로 의회특별위원회가 해체하고 문을 닫을 무렵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때 농담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나는 KCIA 요원으로 이 위원회에서 일했다”고 선언했을때 미국친구들 표정이 순간 굳어져 있었다고 회고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자기가 베네딕 안이라고 독립전쟁때 미국을 배신하고 영국군으로 넘어간 미국 장군 이름이 베네딕이었다.
마지막 위원회 파티는 젊은 미국여자 변호사가 기타로 안홍균을 노래한 장면이 나온다. 놓칠수 없는 이 책의 별미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그의 역할은 분수와 정도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 일은 쉽지 않다.
이 책 안에는 이 도시에 사는 사기꾼들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들 조국에 미국에서 성공한 이민자로 알려진 사기꾼들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30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받아 자기 주머니에 넣은 인물도 나오고 할리데이 호텔 청소부장이 호텔사장으로 둔갑해 공짜 전국구 국회의원도 되는 70년대 한국정치의 어두운 단면이 나온다. 워싱턴 특파원들이 만들어놓은 사기꾼들이었다. 그 다른쪽에 한국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대사관에서 일하다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진실과 사실을 고해성사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분들의 처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박동선 사건으로 친한파 미의원들이 4000달러 봉투를 받은 죄로 정치생명이 끝난 착한 미국인들 모습도 나온다.
이 책 안에는 안홍균이라는 인품이 잘 나타나있다. 나는 그 분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연세대학 재학시절 사제지간으로 만났고 코리아 타임즈에서 만났다. 다른 말로 한국사회에서 출세한 분들이 많았다. 그들에 비해 안홍균의 혈관 속에는 출세지향의 DNA가 없다. 그래서 그는 조용하게 살기를 추구한 어찌보면 시인이나 작가의 인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은 한 목사는 백내장 수술을 받고나서 며칠후 이 책을 하루저녁에 완독했다고 고백했다. 첫 쪽을 읽으면 다음 쪽으로, 그래서 200쪽의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책을 놓았다는 경제학자도 나왔다.
이 책의 매력과 마력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안홍균이라는 인품에서 나오는 정직한 역사의 서술이라고 본다. 일간지 지면이 점점 귀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역사서의 연재를 시도한 한국일보에 작은 찬사를 보낸다. 내 이웃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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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홍 / 시인,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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